지난 9월 일본 법원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관리하는 도쿄전력의 운영진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이들이 쓰나미 피해를 예상해 안전대책을 사전에 세울 수 있었는지였다.당시 일본 검찰은 경영진이 쓰나미 위험성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고받았으면서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44명을 숨지게 했다는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일동은 하나같이 “쓰나미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책을 미루지 않았다”라고 맞받아쳤다.결국 도쿄지방재판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가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세계 역사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는 인간이 대응할 수 없는 자연재해임은 맞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 피해 규모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자들의 안일한 대처 및 후속조치가 외려 화를 더 키웠다고 볼 수 있다.오죽하면 일본 내부에서조차 그들 특유의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최악의 형태로 되돌아왔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 2014년 자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본
과학수사의 발전을 도모하고 과학수사요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경찰청(청장 민갑룡)은 71번째를 맞는 ‘과학수사의 날’을 기념해 유공자 포상 등 축하 행사를 하고 과학수사요원들의 노고와 업적을 치하했다고 밝혔다.경찰은 1948년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감식과'가 신설된 11월 4일을 ‘감식의 날’로 지정했다. 이후 1999년 ‘감식과’를 ‘과학수사과’로 변경하면서 지금까지 ‘과학수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대한민국 과학수사는 그동안 한국형 과학수사(KCSI) 도입 등으로 여러 성과를 거두면서 지속해서 발전하고
2012년 7월 일분 국회 사고조사위원회는 전년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이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밝혔다. 그리고 조사위가 제시한 근거는 하나같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애초부터 침수 위험 지대에 전력설비를 지하에 지은 것부터가 중대한 결함이었다. 또 방호벽보다 훨씬 높은 쓰나미가 덮쳐 비상발전 시스템이 침수돼 고장난 것은 ‘천재지변’으로 판단할 수 있다하더라도 발전소의 운영주체인 도쿄전력이 바닷물 투입을 망설인 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바닷물을 끌어왔으면 그나마 원
2011년 3월 11일 일본 열도가 뒤흔들렸다.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진도 9.0의 강진과 이후 한 달 여 간 이어진 대규모 여진, 연 단위의 소규모 여진 등이 이어지면서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지진 발생 8년이 지난 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지진 발생 당시 나타난 초대형 쓰나미가 동일본 지역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친 것이다. 인류 역사상 두 번째 7등급 원자력 사고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이렇게 시작됐다.7등급 사고는 국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일본은 지진, 화산, 태풍의 위협에 상시 노출돼 있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재난 대비 훈련 및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특히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지진이 굉장히 잦은 편이다. 이에 건물을 세울 때 내진설계는 필수이며 건물 자체의 수명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그들 나름대로 철저하게 공사를 진행한다.또 일본은 세계 최초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발·운용하고 있어 지진 자체로 인한 사망자 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20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가 덮친 2011년의 일본. 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그때 입은 피해의 후유증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다.이번 연재에서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일본 각지에서 발생한 인적·물적 피해가 어느 정도였으며 이것이 2019년 현재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자 한다.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물론 규모가 역대급이기도 했지만, 평소 지진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너무나도 큰 피해가 발생해 전 세계의 시선이 단숨에 쏠렸다.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그 이
동일본 대지진의 전조는 2011년 3월 9일 산리쿠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강진이었다. 그러나 내륙이 아닌 바다에서 일어났고 일본 정부도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왔지만, 다행히 피해가 없었으며 몇 차례 여진만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는 오산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일어난 지진은 말 그대로 일본을 ‘패닉(Panic)’ 상태로 몰아넣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이 ‘재난 대비 강국’의 이미지가 강하고 그들 스스로도 이에 대해 자부하고 있었다. 동일본
십여 년 전만 해도 우리 국민들이 미세먼지, 지진 관련 소식에 귀를 쫑긋 기울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이 재난·재해의 안전지대에 위치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2014년 세월호 사고 등 크고 작은 인재(人災)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중국 미세먼지, 일본 방사능 등 심각한 재난을 유발할 수 있는 국외 요인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대응해 나가야 한다.본지는 그동안 국내외 발생했던 각종 재난·재해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재난·재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