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2의 황유미 인정하는데 10년 걸려

산업안전보건공단,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망연관성 확인
협력업체 직원 역학조사배제, 다른 병 연관성 못밝혀

  • 기사입력 2019.05.23 11:20
  • 기자명 이의정 기자
(사진출처=삼성전자반도체이야기)
(사진출처=삼성전자반도체이야기)

반도체 제조업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생 원인이 작업환경에 있다는 사실이 10년 만에 정부의 공식인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혈액암으로 숨진 반도체 근로자가 170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너무 늦게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고용노동부(장관 이재갑)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대표자 박두용)은 지난 22일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단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6개 기업 반도체 사업장 9곳의 전·현직 근로자 약 20만명을 2009년부터 추적 조사한 결과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의 백혈병 발생 위험이 일반 노동자의 1.55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20~24세 사이의 여성 노동자의 경우 백혈병 발생 위험이 일반 노동자에 비해 2.74배나 높았다. 백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도 반도체 여성 노동자가 일반 노동자의 2.3배, 일반 국민의 1.71배에 달했다. 백혈병과 함께 혈액암에 속하는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 반도체 근로자의 발생 위험은 일반 국민의 1.71배, 전체 근로자의 1.92배로 조사됐다.

그러나 공단은 혈액암 발생에 대해서는 특정한 원인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여러 사항을 종합할 때 작업환경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두용 공단 이사장은 “이번 반도체 역학조사 결과를 통해 국내 반도체 제조업의 암발생 위험을 관리하고, 능동적 예방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공단은 향후 업종별 위험군 역학조사를 활성화해, 질병발생 전 위험을 감지하는 역학조사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본지와의 통화를 통해 “그동안 반도체 노동자들이 주장한 사실이 정부의 인정을 받는데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불필요한 시간을 소비한데 대해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더불어 “이번 역학조사에 협력업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연구대상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과 백혈병 외에 피부 흑색종, 뼈관절암, 같은 희귀암 7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현재 반도체 제조공정에는 정규직 외에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협력업체를 포함한 반도체 노동자들이 계속적으로 반올림에 열악한 노동환경과 산업재해를 제보하고 있으며 산재신청을 한 141명 중 54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반올림 관계자는 “이번 발표를 통하여 반도체 작업환경이 더욱 개선되어야 하겠고 기업들이 반도체 제조작업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성을 노동자들에게 철저하게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출처=삼성반도체이야기)
(사진출처=삼성반도체이야기)

지난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황유미(당시 23세) 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황상기씨는 같은 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백혈병의 산업재해와의 연관성을 부인했고 삼성전자도 인과관계를 강력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은 황유미 씨 등 2명에 대해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했으며 2018년 7월에 삼성전자와 반올림, 조정위가 중재 합의서에 서명하면서 삼성전자가 11년 만에 ‘반도체 백혈병’에 대해 산업재해를 공식 인정하며 사과했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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