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산재 은폐로 숨진 故 이진재 고통 속에 아스라이 저물다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노동자 40세 나이로 사망
유해환경속에 노동자들 안정장치 없이 일해
한국타이어, 산재은폐 시인하고 후진국형 작업환경 개선해야

  • 기사입력 2019.06.05 12:26
  • 최종수정 2019.06.05 12:30
  • 기자명 이의정 기자
(사진=KBS 시사프로그램 추적 60분 '한국타이어 은폐 의혹 10년, 노동자들의 죽음편에서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노동자였던 故이진재 씨의 생전 모습.)
(사진=KBS 시사프로그램 추적 60분 '한국타이어 은폐 의혹 10년, 노동자들의 죽음편'에서 한국타이어 금산공장 노동자였던 故이진재 씨의 생전 모습.)

고무연기 피어오르는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열심히 일하면 인생의 희노애락을 머리 희끗할 때까지 맛볼 줄 알았다. 하지만 손에 쥐어쥔 것은 수십개의 약 봉지뿐. 그렇게 소리없이 그는 죽어갔다.

지난 3일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이던 이진재 씨가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14년 36살 이른 나이에 활막육종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3번의 다리근육 절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하늘로 떠났다.

고 이진재씨는 청운의 꿈을 안고 2010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했다. 으뜸사원으로 뽑힐 만큼 열의를 다했던 한국 타이어의 자랑스런 직원. 하지만 입사 4년만에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공장 문을 나와야만 했다. 암에 걸린 것이다. 건강했던 이 씨가 왜 암에 걸린 것일까.

이 씨는 타이어 완제품에 생산자 직인을 찍는 작업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솔벤트라는 물질을 여기저기 묻혀야했다. 솔벤트는 공장에서 타이어 고무 분리할 때는 물론 접착하거나 생산자 확인 직인을 찍을 때 등 다양하게 사용되는 물질이다.

고인은 죽기직전까지도 고통을 호소하였다.  2018년 11월 16일 방영된 KBS 시사프로그램 추적 60분에서는 고 이진재씨의 생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백지장 같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선, 숨 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어했다.

한국타이어 작업장은 2008년 집단 돌연사 논란이 있은 이후에도 2016년까지 사망한 전·현직 근로자만 46명에 이른다. 이들 중 자살만 10명에 이른다. 이는 한국타이어가 집계한 사망자 수이기 때문에 사망자는 더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씨도 이들처럼 원인도 모른 채, 사망했다.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 의문사로 사망한 근로자 수와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얼마인가, 대한민국 산업현장에서 산재 은폐 1순위로 정점을 찍고 있다.

故 이 씨가 사용한 솔벤트에는 휘발유 찌거기로 만들어진 복합유기용제(VOC)가 들어간다. 알 수 없는 물질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만들어진 용제를 말한다. 여기에는 톨루엔, 자일렌(크실렌) 등 세척 성분이 강한 휘발성유기화합물도 복합적으로 섞여 사용된다. 한국타이어는 고무를 성형하는 데 쓰는 복합유기용제의 성분에 벤젠도 사용해왔다. 벤젠은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물질이다. 톨루엔과 자일렌은 벤젠고리로 만들어진 탄소분자로 열이 가해지거나 다른 화학물질과 반응하게 되면 벤젠이 배출된다.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 쓰는 톨루엔과 자일렌은 국제암연구소에서도 발암물질로 분류하며 위험성이 높은 독성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故 이 씨는 자신의 병이 이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해 산재를 신청했으나 한국타이어측과 근로복지공단은 받아주지 않았다. 회사와 공단측은 이 씨의 활막육종암과 솔벤트는 연관성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던 것이다.

회사측은 2008년 이후부터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의 유해화학물질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솔벤트를 취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회사의 발뺌은 언론사를 통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한국타이어는 여전히 톨루엔과 자일렌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작업장 내부의 분진에서도 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발견됐으며 그중 8개는 발암 기능 물질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1급 발암물질인 벤조에이피렌도 포함돼 있다.

또한 타이어를 고온에서 찔 때 발생하는 기체 ‘고무 흄’의 경우도 한국타이어 작업장 내 여기저기서 뿜어 나오고 있다. 숨쉴 때 마다 노동자의 폐 속으로 유해물질이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타이어 공장은 죽음의 공장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작업환경에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누가봐도 상식 밖의 일인 것이다.

故 이진재 씨의 죽음에 앞서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만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15명(자살1명)이 심근경색과 심장질환 등으로 집단 돌연사했다. 이들 모두 산재인정이 거절된 채 의문사로 처리됐다. 이들의 사인을 밝히려는 역학조사 또한 은폐되었다. 당시 국회나 시민단체, 회사측은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눈을 감았다.

국내 타이어업계 1위 한국타이어는 세계로 뻗어가는 수출역군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무덤’, ‘산재의 공장’이란 오명을 달고 있다. 지난 20년간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168명에 이른다.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위원장 박응용, 이하 산재협의회)는 “한국타이어 하청업체 비정규직을 제외한 정규직만 현재 5831명 중 절반 정도인 2611명이 질환자이며, 이는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피해로 전쟁 중에도 발생할 수 없는 대재앙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수백 명의 한국타이어 공장 노동자들이 사망했거나 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산업재해 보상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역학조사에도 유기용제(시너·솔벤트 등 어떤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액체상태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질)중독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과 인과관계가 불분명해 의학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회사는 여전히 떳떳하고 당당하다. 회사는 정규 교육과 안전 규제를 엄격하게 지켜오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산재 인정은 한국타이어가 정하는 게 아니고 근로복지공단이 정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고 이진재 씨의 사망소식에 대해서도 회사측은 “할 말이 없다”고 일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당시 어떤 것도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산업안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이제 이 공약이 한국타이어 노동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에 정부의 철저한 피해 조사와 대책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故 이진재씨의 죽음이 알려지며 또 다른 이진재를 만들어선 안된다는 노동계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태안화력 발전소 비정규직 근로자였던 故김용균씨의 애석한 죽음을 기려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됐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타이어 작업장에서는 제2, 제3의 이진재가 창문이 굳게 닫혀 있는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된 채,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 한국타이어 작업장을 가리켜 오늘날 우리는  ‘죽음의 공장’이라 부른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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