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불화수소 한국에 공급 '깜짝' 제안

정부 외교 채널로 제안 전달
기업들, 러시아산 품질 검증 안돼 미지수
露, 韓 대상으로 ‘자원무기화’ 의도여부 파악해야

  • 기사입력 2019.07.12 16:36
  • 기자명 이의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0일 청와대에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0일 청와대에서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러시아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대상 품목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한국에 공급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가운데 그 진의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간담회에서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은 “러시아 정부가 주·러 한국대사관을 통해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데 러시아가 일본보다 더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산보다 품질이 우수한 러시아산 불화수소를 삼성에 공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라고 전했다. 마침 정부도 일본산 불화수소를 대체할 경로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일본 정부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을 제작할 때 감광제로 쓰이는 레지스트와 함께 불화수소를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회로의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에칭(etching,식각) 공정과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독성이 있는 부식성 기체이다. 국내에서는 환경규제로 생산이 쉽지 않아 수입에 의존해 왔다. 특히 오래 보관할 경우 물질 특성이 바뀌기 때문에 필요한 양만큼만 수입해 사용해 왔다. 고순도의 불화수소는 에칭가스(etching gas)라고도 부르며, 고순도 불화수소를 사용하면 생산량 대비 결함이 없는 제품 비율인 수율이 높아지고 품질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고순도 불화수소는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불화수소 일본산 비중은 41.9%로 높다. 일본이외에 중국과 대만, 인도에서 불화수소를 수입하고 있다.

만약 러시아의 공급 제안이 성사돼 한국이 러시아산 불화수소를 수입할 수 있다면 일본이 수출을 규제해도 한국 기업의 불화수소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반도체 생산라인공정에 들어가는 화학제품을 신제품으로 바꿀 경우 라인을 안정화시키는데 6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고순도 불화수소는 민감한 물질이라 테스트 기간만 2개월 넘게 걸린다. 이 테스트 과정에서 반도체 생산량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더구나 러시아산 불화수소가 섬세한 반도체 공정에 적용이 가능한 품질인지 검증이 되지 않는 시점에서 마냥 반길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삼성 반도체 관계자는 “러시아산 불화수소 품질에 대해 테스트해 본 것도 아니고, 쓸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보였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 하나를 만드는 데 1조원가량이 들기 때문에 설비 보안에 무척 신경을 쓴다고 한다”라면서 “삼성전자도 오랜 기간 신뢰가 쌓인 일본 업체와 지속적으로 거래를 해온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러시아가 자국의 천연가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있어 더욱 신중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거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에 수출했다. 유럽국가들은 나라별로 작게는 24% 많게는 100%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했다. 그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분쟁이 발생하자 2009년, 2014년에 천연가스의 밸브를 잠가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국가 전체에 경제대란이 발생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보아 러시아가 불화수소를 한국에 공급하려는 것이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의도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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