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24시] 안녕들하십니까?…예상 웃돈 재앙에 日 ‘속수무책’

지진 속보 전달하는 방송국조차 ‘충격과 공포’
40여m에 달하는 쓰나미 내습…후쿠시마 원전사고 야기

  • 기사입력 2019.09.22 17:28
  • 기자명 임영빈 기자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 연안 지방을 덮쳤다. (사진출처=NHK중계 영상 갈무리)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 연안 지방을 덮쳤다. (사진출처=NHK중계 영상 갈무리)

동일본 대지진의 전조는 2011년 3월 9일 산리쿠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강진이었다. 그러나 내륙이 아닌 바다에서 일어났고 일본 정부도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왔지만, 다행히 피해가 없었으며 몇 차례 여진만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는 오산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일어난 지진은 말 그대로 일본을 ‘패닉(Panic)’ 상태로 몰아넣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이 ‘재난 대비 강국’의 이미지가 강하고 그들 스스로도 이에 대해 자부하고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21세기 일본 사회를 송두리째 뒤바꿀 정도의 충격을 줬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지진이 최종 마무리될 때까지 일본이 입은 피해 규모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 강도 높은 지진 발생…소식 전하는 방송국조차 당황 역력

지리적으로 일본은 지각이 불안정하며 지각이 소멸되는 판상경계인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진, 화산, 태풍이 잦으며 그만큼 국민들의 경각심도 대단하다. 건축 과정에서 내진 설계는 필수 및 의무적이며 매년 지진 대피 훈련도 강도높게 실시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안전모 사용법과 지진 대피요령 등을 철저히 교육받는 등  국민들의 훈련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진이 발생하거나 지진 발생 예보가 내려지는 순간 대략 기상청 핫라인을 통해 일본의 모든 방송에 지진 속보가 뜨고 주민들의 휴대전화에도 관련 메시지가 전달된다.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 발동 직전에야 알 수 있는 재해이며 초동 지진이 일어난 후 약 1분 이내에 대피해야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이러한 노력들을 가뿐히 허사로 드는 최악의 형태로 일본을 덮쳤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지진의 규모와 파괴력에 ‘준비성이 철저한’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경 일본 공영방송 NHK는 국회 중계 방송 중이었다. NHK는 지진 발생 32초 후 방송에 긴급지진속보를 냈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강한 흔들림에 주의하시기 바란다’라고 메시지와 함께 주의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수차례 송출했다.

이때만 해도 방송 화면에서 보이는 국회의 모습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진파가 도쿄에 도달하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촬영을 위해 국회에 설치된 카메라가 흔들렸으며 진동이 심상찮음을 감지하고 불안해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NHK는 지진 발생 2분 후 정규방송을 급하게 멈추고 긴급뉴스로 전환했다. 그러나 긴급뉴스를 진행하던 도쿄 스튜디오 역시 지진으로 인해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달했다. 앵커의 멘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방송국 스태프들이 “흔들린다”, “도쿄 비춰” 등 서로 간 대화가 들리면서 사태가 심상찮음을 느끼게 했다.

2011년 4월 11일 지진 특집 방송 차원에서 주민 대피소를 취재하던 NHK 카메라에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이 잡혔다. 이후 NHK는 긴급지진속보를 전달했다. (사진출처=NHK뉴스 영상 갈무리)
2011년 4월 지진 특집 방송을 위해 주민 대피소를 취재하던 NHK 카메라에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지는 모습이 잡혔다. 이후 NHK는 긴급지진속보를 전달했다. (사진출처=NHK뉴스 영상 갈무리)

지진 발생 후 약 3분 55초 뒤에는 해일경보가 발령됐다.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는 한 단계 위인 대해일경보가 발령됐다.

방송에서는 국민들에게 “강이나 하구 등 부근에는 절대로 다가가지 마십시오”, “연안 부근에 계신 분들은 속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라고 경고하고 있으나 진행자들의 멘트에서조차 불안함과 당혹감이 여실히 묻어났다.

지진이 일어날 당시 일본 지상파 방송국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후지 텔레비전은 아나운서가 미처 착석하지 못해 텅 비어있는 스튜디오를 그대로 방영했고 니혼T의 경우 흔들리는 스튜디오 조명과 혼란스러워하는 직원들을 배경으로 아나운서가 방송 원고를 급하게 받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일본 기상청은 긴급지진속보 이후 최초에 지진 규모를 리히터 규모 7.9로 발표했으나 미국 지질조사소에서 8.9로 발표하자 약 1시간 뒤에는 8.4로, 2시간 반 뒤에 8.8로 잇따라 고쳐 발표했다. 이후 13일 낮 피해 규모 등을 종합해 규모 9.0으로 수정 발표했다.

기존 규모 8.8과 비교했을 때 에너지가 4배 이상 큰 수치였다. 이는 일본의 근대지진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판명됐으며 일본 언론에서도 ‘사상 최악의 지진’이라는 제호로 보도를 이어갔다.

2016년 7월 11일 미국 지질조사국(USGS)는 동일본 대지진 규모를 9.1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동일본 대지진은 1900년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한 지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진은 내진설계로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쓰나미(지진 해일)는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 40여m에 달하는 대형쓰나미, 일본을 덮치다

일본 동북 지방을 덮친 쓰나미 (사진출처=NHK 중계영상 갈무리)
일본 동북 지방을 덮친 쓰나미 (사진출처=NHK 중계영상 갈무리)

지진이 일어난 후, 일본 기상청은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키사마현 세 곳에 쓰나미경보를 내렸다. 그 외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곳에는 쓰나미주의보를 내렸다. 이 당시 기상청은 쓰나미 높이를 미야기현 6m, 이와테현과 후쿠시마현은 3m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닥친 쓰나미의 높이는 이를 훌쩍 넘었다.

특히 2011년 도쿄대학 지진연구소의 현지조사에 따르면, 이와테현 미야고 시 다로 지구를 덮친 쓰나미의 경우 공식 높이가 37.9m였다. 이는 지난 1896년 이와테현 오후나토 시에서 관측됐던 38.2m에 이어 일본에서 관측된 쓰나미 중 사상 두 번째로 높은 파도였다.

이튿날 오전 3시 20분에는 태평양 연안 홋카이도부터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시코쿠와 아오모리현 동해 연안에 쓰나미경보(대쓰나미)가 홋카이도 동해 연안 남부와 도쿄만 내항, 이세만, 세토 내해 일부, 규슈, 난세이 제도는 쓰나미경보가, 일본 동해 연안과 세토 연안 일부에는 쓰나미 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그야말로 일본 연안 전 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일본 도호쿠지방 후쿠시마현 오쿠마마치에 위치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도 쓰나미가 덮치면서 인류 역사상 두 번째 7등급 원자력 사고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왼쪽)와 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소 비교 항공사진 (사진출처=ABC뉴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왼쪽)와 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소 비교 항공사진 (사진출처=ABC뉴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력 발전소 부지 선정에서부터 관련 기관의 안이함과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이며 일본 특유의 관료주의의 병폐가 여실히 드러났으며 2019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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