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24시] 안녕들하십니까?…동일본대지진의 아픔은 ‘현재 진행 중’

일본 식량 자급 책임졌던 동북지역 농수산업 직격타…방사능 농산물 위험성 대두
예상외 재난에 무기력한 일본 시민…일부는 ‘혐한’ 표현도 서슴지 않아
日 특유 관료주의 병폐로 시민 고통 가중…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 악화에도 일조

  • 기사입력 2019.09.26 17:39
  • 기자명 임영빈 기자
2011년 3월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산리쿠 연안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11년 3월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산리쿠 연안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일본은 지진, 화산, 태풍의 위협에 상시 노출돼 있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재난 대비 훈련 및 관련 교육을 진행한다.

특히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지진이 굉장히 잦은 편이다. 이에 건물을 세울 때 내진설계는 필수이며 건물 자체의 수명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그들 나름대로 철저하게 공사를 진행한다.

또 일본은 세계 최초로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발·운용하고 있어 지진 자체로 인한 사망자 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발생한 희생자 중 약 90%의 사망원인은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가 아닌 익사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결코 경미한 수준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진 발생 8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2011년 지진은 일본 사회에 ‘충격’ 그 자체였다.

이번 연재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사회 각계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였으며 2019년 현재 일본 사회 내에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남아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산업 전반 피해 막심…농수산업 방사능 문제 발생

올 7월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일방적으로 단행하면서 양국 간 경제 교류가 대폭 축소됐다. 이로 인해 일본 사회에서 자국의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상호 경제적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기 때문에 반도체 소재뿐만 아니라 각종 부품이나 관련 연계 산업 등의 간접적 경제 피해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진 피해 지역에서 구조 활동 중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 소방국 구조부대원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지진 피해 지역에서 구조 활동 중인 사이타마현 가와구치시 소방국 구조부대원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특히 지진 피해 지역과 인접한 도쿄에는 당시 삼성전자, LG전자 등 반도체 및 LCD 업체 현지 판매법인 등이 소재해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현지에서 근무하던 우리 기업 직원들 역시 지진의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됐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지진 사태 관련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등 우리 국민의 피해 여부 살피기에 나선 바 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산업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각 산업별로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우선 예상외로 IT·디스플레이등 이른바 첨단 산업군의 경우, 대일(對日)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부 반도체 품목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 당시 반도체 업계에서 일본의 점유율이 20%에 육박했을 뿐 아니라 피해 복구 작업이 지체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긴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다.

특히 세계시장 점유율 60%를 기록 중이던 신에쓰화학, SUMCO의 가동중단, 르네사스와 도시바의 MCU칩 공급 차질은 한동안 업계 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산업은 농축수산업 등 이른바 1차 산업이다. 지진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은 도호쿠 지방의 경제기반은 농수산물이다.

도호쿠 지방은 북쪽의 훗카이도와 함께 일본의 식량 자급률을 그나마 견인해오던 쌍두마차 역할을 해왔는데 지진 및 원전사고로 인해 지역이 초토화되면서 경제 기반도 붕괴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 정부가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전대미문의 캠페인을 권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예상 외’ 사태에 드러난 일본 시민들의 민낯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등 재난이 장기화 조짐을 띄면서 몇몇 일본인들의 약탈 소식이 하나둘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관료주의가 이와 결합돼 2차 피해의 규모가 더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까지 했다.

2011년 3월 22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일부 지진 피해지역에서는 식품 및 현금자동지급기(ATM)에 대한 주민들의 약탈이 벌어졌으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쓰나미가 물러간 뒤 수백명의 사람들이 기린맥주 센다이 공장 주변에 널부러진 맥주와 음료를 챙겨갔으며, 같은 지역 북부 이시노마키에서는 편의점이 두 곳 이상 약탈을 당했다. 피해 편의점은 진열대 제품이 모두 사라졌으며 점포 내 ATM기는 현금을 꺼내려고 시도한 흔적까지 남았다.

2011년 물류 집하가 중지돼 상품이 진열되지 않은 도쿄 소재 모 편의점 가판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11년 물류 집하가 중지돼 상품이 진열되지 않은 도쿄 소재 모 편의점 가판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또 그간 대비 훈련으로도 겪어보지 못했던 사태와 공포와 그리고 이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을 못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를 하나둘 표출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등 원자력 문제의 경우 “정부가 상황을 덮는데 급급하다”라는 불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며 지진 피해 지역의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주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막히는 등 피해 지역 거주민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 현지 교민들 중 몇몇은 주변으로부터 “이게 다 너희 ‘조선인’들 때문”이라며 근거 없는 악의적 표현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에 퍼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피해 더욱 악화시킨 특유의 관료주의

지진 발생 전까지만 해도 규정에 철두철미한 것을 높게 평가받았던 일본 특유의 관료주의는 정작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잇따른 실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힘을 잃고 자유민주당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서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시 지적받은 병폐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진으로 인해 훼손된 고속도로를 간신히 복구했는데 정작 구호물자를 실은 차량들이 ‘통행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운행을 못하게 하고 국도로 우회운행토록 했다. 그런데 국도 일부 구간에서는 ‘과적’을 이유로 운행을 제한했다.

또 재해 지역 내 연료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트럭에 드럼통에 유류를 담아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안전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각하된 경우도 있었다.

2011년 3월 쓰나미 피해로 흙탕물에 뒤덮인 센다이 공항 활주로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11년 3월 쓰나미 피해로 흙탕물에 뒤덮인 센다이 공항 활주로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설상가상 육로뿐만 아니라 하늘길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 간신히 센다이 공항을 복구했는데 국토교통성이 ‘활주로 안전검수를 못 받았다’라면서 비행기 이착륙을 금지시킨 것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일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논란이 일었던 것은 일본이 구호 작업 중이던 미군에 대해 “(일본의) 허락 없이 규정을 무시하고 구호물자를 분배해서 자국의 구호품 분배계획을 무너뜨렸다”라고 항의한 점이다.

이 때문에 구호물자를 나눠주던 미군은 구호물자를 피난민 구호시설 인근에 파기하는 식으로 지원해야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을 벌여야만 했다.

세계 각국 언론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허술한 위기관리 체계, 매뉴얼과 절차에 얽매여 유연하게 대응하지 않는 관료주의 등이 빚어낸 비극”이라며 “이는 그 누구도 결정하고 결정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대재앙

동일본 대지진은 인류 역사상 그와 유사한 수준을 찾기 어려울 대형 지진이었다. 진도 9.1이라는 일본 국내 관측 사상 최고 규모였으며 이후에도 약 한 달여 게러쳐 대규모 여진 및 연 단위의 소규모 여진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초대형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 사고로 인해 태평양 일대가 방사능 오염에 무방비하게 노출됐으며 아직까지도 수습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후쿠시마 방사능은 정부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다”라고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홍보하면서 위험성을 축소·은폐하려해 일본을 제외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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