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2019 韓 광장, 정치권은 시민의 뜻을 온전히 받들어야

광화문도 서초동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공정과 정의”
정작 정치권은 진영 대결 골몰…대화 없이 ‘세 부풀리기’에만 여념

  • 기사입력 2019.10.06 19:04
  • 기자명 임영빈 기자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를 근거로 세력 확장·과시에만 힘쓰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출처=각 정당 공식 홈페이지)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를 근거로 세력 확장·과시에만 힘쓰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출처=각 정당 공식 홈페이지)

국어사전에서 광장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 또는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해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그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정치·사회적 토론의 장으로서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하게 나타낼 수 있는 곳이 오늘날의 광장이다. 과거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시대에 직접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단어 ‘아고라’도 바로 도시국가 내 자리한 광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광장은 지배세력이 권력을 뽐내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을 억압하는 장소로도 이용됐다. 과거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등 독재자들은 바로 이 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하면서 그 위세를 뽐내고 국민을 억압했다.

결론적으로 광장을 차지하는 주체와 그들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광장의 성격이 결정되고 이것이 먼 훗날 역사의 분기점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한국이 전 세계로부터 극찬을 받게끔 하고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이뤄진 광화문 촛불집회였다. 추운 겨울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남녀노소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헌법정신을 유린하고 국민을 우롱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부르짖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진영론은 전혀 맥을 못 췄다. 시민들은 국회와 언론을 움직이게 만들어 대통령이 탄핵소추와 가결 후 판면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 선출까지 했다. 세계역사상 전례가 없었을뿐더러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뒤, 또다시 많은 시민들이 하나둘 광장에 모여들고 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 모습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서초동 광장으로 향하는 또 다른 이가 있다.

즉, 2019년 광화문·서초동 광장과는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광장이다. 2016년 당시 ‘헌정유린 정권 탄핵’이라는 공동의 대의명분도, 진영을 초월한 합의점도 2019년의 광장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검찰개혁’과 ‘조국 사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열과 대립만이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시민들의 본질은 2016년과 다를 바 없다. 정치권의 무능함에 분노한 시민들이 집결한 것인데 정작 정치권은 이를 곡해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엇에 분노해 모였는지 이를 헤아리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건만 정작 이들은 그 접근부터 헛걸음을 내딛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케케묵은 진영론을 또 들먹이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자기들 멋대로 편가르기 하면서 “우리 편이 더 많다”라고 유치한 힘자랑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검찰개혁과 사회개혁이라는 이 시대의 중대한 화두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확인하기 위해 모였다. 그러나 정치권도 그 본질이 끝까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광장’의 상징성과 성장동력은 훼손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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