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24시] 안녕들하십니까?…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원전사고 피해

지난 9월 일본 법원, 원전 사고 당시 도코전력 운영진 전원 무죄판결
후쿠시마 주민들 “책임 방기, 자기보신 급급한 문화 반복” 성토

  • 기사입력 2019.11.22 14:19
  • 최종수정 2019.11.22 17:33
  • 기자명 임영빈 기자
지난해 11월 제1원전 3호기 핵연료 풀에서 연료를 꺼내는 작업 중인 도쿄전력 직원들 (사진출처=도쿄전력)
지난해 11월 제1원전 3호기 핵연료 풀에서 연료를 꺼내는 작업 중인 도쿄전력 직원들 (사진출처=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세계 역사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는 인간이 대응할 수 없는 자연재해임은 맞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그 피해 규모를 최대한 줄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자들의 안일한 대처 및 후속조치가 외려 화를 더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일본 내부에서조차 그들 특유의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최악의 형태로 되돌아왔다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 2014년 자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에는 공통되게 ‘자기 책임 회피’라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작가는 이 같은 행태가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에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누가 가해자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추궁하고 있지 않다”면서 “물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측면이 있다만,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진, 쓰나미가 최대 가해자이고 우리 모두는 피해자’라는 식으로 정리가 될 수 있다. 이는 1945년 종전 때와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작가의 불길한 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화됐다

일본 법원, 도쿄전력 관계자 전원 무죄 판결

2019년 9월 19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가쓰마트 쓰네히사 전(前) 도쿄전력 회장과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 다케쿠로 이치로 전 부사장 3인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이들의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금고 5년 수준의 형량이 선고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왼쪽부터) 무토 사카에 전 도쿄전력 부사장, 다케쿠로 이치로 전 도쿄전력 부사장, 가쓰마타 쓰네히사 전 도쿄전력 회장 (사진출처=일본 마이니치 신문 공식 SNS 갈무리)
(왼쪽부터) 무토 사카에 전 도쿄전력 부사장, 다케쿠로 이치로 전 도쿄전력 부사장, 가쓰마타 쓰네히사 전 도쿄전력 회장 (사진출처=일본 마이니치 신문 공식 SNS 갈무리)

경영진 3인을 기소한 검찰 측도 “도쿄전력 경영진이 15m 높이 이상의 쓰나미가 원전시설을 덮칠 수 있다는 보고서를 2002년부터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예방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8년 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원전 시설을 운영한 경영진 3명에 대해 ‘형사 책임이 없다’라고 최종 판결을 내렸다.

앞서 이들은 2013년 검찰에 의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이에 반발한 후쿠시마 주민들에 의해 ‘강제 기소’라는 제도를 통해 재차 기소됐다. 이 제도는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일반 시민 등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기소를 의결하기로 의견을 모으면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가 피의자를 기소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들 3인은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거나 대책을 미루지 않았다면서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재판소 앞에 모여 판결 결과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왜 무죄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판결 이유를 들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분하다”라며 강하게 성토했다.

“도쿄 전력, 아베 정권 모두 문제 해결에 소극적” 비판

이번 재판 결과를 두고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자국 특유의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최악의 형태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는 지난 2013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일본 검찰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관련해 고소·고발당한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 가쓰마트 쓰니히사 전 도쿄전력 회장 등 관계자 40여 명을 전원 불기소 처분했다.

동일본 대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2011년에 발생했는데 2013년이 돼서야 책임 추궁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기소된 이들 중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며 사건을 사실상 종결시켜버렸다.

이같은 행태는 일본 내부에서도 극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2014년 7월 31일 일본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책임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재차 의결했다. 단, 간 나오토 총리의 경우 불기소가 타당하는 이유로 명단에서 제외됐다.

2015년 8월 1일 검찰심사회가 2차 심사에서도 도쿄전력의 전(前) 경영진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당시 기소된 이들은 카츠마테 츠네히사 전 도쿄전력 회장,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 타케쿠로 이치로 전 부사장 3인이다.

지난 9월 19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앞에 모인 시민 중 한명이 법원의 도쿄전력 운영진 전원 무죄판결을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출처=일본 마이니치 신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9월 19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앞에 모인 시민 중 한명이 법원의 도쿄전력 운영진 전원 무죄판결을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출처=일본 마이니치 신문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그리고 4년이 흐른 뒤 올 9월 도쿄지방재판소는 이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부터 발전소 관련 사건사고를 숱하게 은폐해온 전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2011년 원전사고 때도 그대로 이어져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다. 일본 내에서 원전사고를 ‘예견된 인재(人災)’라고 평하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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