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코드제로' : 세상을 놀라게 한 항공 사건] 로커비 항공기 사고( Lockerbie Affair ) (1)
[비상사태 '코드제로' : 세상을 놀라게 한 항공 사건] 로커비 항공기 사고( Lockerbie Affair ) (1)
  • 이의정 기자
  • 승인 2020.01.15 0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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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서방세계에 보복으로 비행기 테러자행
비행기 테러의 심각성 일깨우며 수하물 검사 강화 계기
로커비 사건으로 인해 공항에서 엑스레이 보안검색대가 시작됐다.(사진출처=픽사베이)

로커비 항공기 사고는 1988년 12월 21일(현지시각)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보잉 747 여객기가 리비아의 테러 집단에 의해 비행 도중 폭파된 사건이다. 사건 장소의 이름을 따 로커비 테러로도 불린다. 이 사고로 승무원과 승객 259명이 전원 사망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 카다피, 리비아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비행기 테러자행

1988년 12월 21일, 평화로운 저녁, 남부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마을에 정적을 깨는 폭발음이 하늘에서 울렸다. 잠시 후 하늘에서 별똥별같은 물체들이 하나 둘 씩 떨어지더니 거대한 불덩이가 마을 중심부를 덮쳤다. 마을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여기저기 화재가 발생했고 11명의 마을 주민이 사망했다.

경찰관은 떨어진 물체를 조사하면서 뉴욕 JFK행 비행기 티켓을 발견했다. 뭔가 이상한 예감을 느낀 마을 사람들은 아침이 되고서야 밤사이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이가 비행기 잔해였음을 알았다. 마을 중심부에는 불덩이에 휩싸인 거대한 보잉 747기의 날개가 떨어져 있었으며 비행기의 부서진 잔해들이 마을 중심부에서 2km 떨어진 들판까지 널브러져 있었고 더 끔찍한 것은 승객들의 사체가 마을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산산조각이 난 비행기의 정체는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해 뉴욕으로 날아가던 팬암항공사의 보잉 747기(팬암 103편)였다.

비행기는 폭발로 인해 공중 분해됐다. 이 사고로 타고 있던 승객ㆍ승무원 259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마을 주민과 함께 270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당시 인도항공 182편이 테러로 대서양에서 공중 분해된 지 3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비행기 폭발원인이 테러에 촛점이 맞춰졌고 이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됐다. 영국과 미국의 조사관들은 비행기의 앞부분 화물 적재실에 450g짜리 시한폭탄이 폭발한 것을 알아냈다. 이 시한폭탄 은 라디오에 장착이 됐으며 증거가 남지 않도록 바다에서 폭발하게 시간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팬암 103편의 출발 지연으로 인하여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발하게 된 것이다.

영국과 미국 합동 수사팀은 3년간 50개국 1만 4000여명을 심문한 끝에 리비아 테러리스트가폭탄을 최초 출발지인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용의자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리비아에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는 이를 거부했다.이에 유엔은 리비아 경제제재에 들어갔으며 이 제재가 오랜시간 계속되자 리비아는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 넬슨 만델라의 중재로 알 메그라히와 칼리파 파미하 등 용의자 2명의 신병이 인도됐다.  스코틀랜드 법원은 팬암 103편의 폭파 용의자로 알 메그라히를 기소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2002년 5월 29일 리비아는 경제제재를해제해 달라는 조건으로 팬암 103편의 폭탄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며 270명의 팬암 103편의 희생자들에게 27억 달러를 배상했다.

당시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어 엎은 카다피는 강대국들이 테러라고 부르는 행위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무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국에서부터 필리핀에 이르는 세계 전역에서 테러를 일으켰 세계를 위협했다. 미국은 1986년 이런 리비아의 테러에 강수를 두고 공습을 단행했다. 팬암 103편 폭탄테러는 미국의 리비아 공습에 대한 카다피의 보복이라는 해석이 다수다.

◆ 비행기 테러의 심각성 일깨우며 수하물 검사 강화 계기

1992년 미국 연방법원은 수하물 검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팬 아메리칸 항공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팬암 103편의 폭발사건은 팬암에게 거대한 타격을 입혔고 결국 1991년에 항공사는 영원히 문을 닫았다.

이 사고는 항공 업계에 폭탄 테러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이 사고로 인해 엑스레이 검사기가 도입되는 등 수하물 검사가 한층 강화됐다. 탑승 전 승객들을 검사하는것이 필수가 됐으며 승객들과 승무원, 조종사들을 위한 테러 위협시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모든 공항 직원들의 뒷조사 (범죄 경력)를 실시하게 했으며 테러 위협을 받을 경우 항공편을 취소하게 됐다.

항공업계에서는 연결 항공편의 짐을 싣는 행위가 전면 금지됐다. 항공업계는 승객과 수하물이 일치해야 비행기가 출발하는 규칙을 만들게 됐다. 보딩패스를 확인하여 승객이 탑승하지 않았다면 짐을 죄다 내려서 안 탄 사람의 수하물은 빼고 출발해야 한다. 또한 승객의 짐과 승객이 같이 탑승하지 않을 경우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