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엄마와 아이는 한 몸이다"...심장질환아 출산한 간호사들 산재인정

출산 10년만에 제주의료원 간호사들, 눈물의 승리
유해한 근무환경에 노출된 산모, 태아에게 영향 미쳐

  • 기사입력 2020.04.29 16:26
  • 기자명 이의정 기자
(사진출처=제주의료원 홈페이지 갈무리)

대법원이 엄마와 아이는 한 몸으로 여성 근로자가 출산한 아이에게 선천성 질환이 있을 경우, 이를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산모가 유해한 근무환경 속에 근무하다 질병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면 산업재해로 볼 수 있다는 최초의 판례가 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9일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 A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 취소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09년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로 일하던 중 A씨 등은 2010년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 같은 기간 병원에서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은 유산을 겪었다. 이에 의문을 품은 간호사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였다.

결국 2011년 제주의료원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이듬해 산학협력단은 유산 등이 업무상 연관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더불어 2013년엔 한국산업언전보건연구원에서 추가 역학조사가 있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간호사들은 인원부족으로 인한 야간근무 증가와 휴식 부족 및 오염물 처리 등에 따른 감염 위험과 상사의 폭언, 환자의 욕설, 치매와 알콜중독 환자들의 폭력과 성희롱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A씨 등은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에게 선천성 심장질환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만을 의미해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며 이를 반려했다.

이에 A씨 등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라며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근로복지공단은 상고했고 2심에선 판결이 뒤집어졌다. 2심 재판부는 “산재보험 급여를 받으려면 업무상 사유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본인이어야 한다”며 “태아의 건강손상에서 비롯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며 “모(母)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모(母)가 출산 이후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 수급권을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결하고 간호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간호사들이 출산한지 10년만에, 소송이 제기된지 6년만에 나온 눈물의 승리였다.

노동계와 여성계는 이번 판결이 아이가 유산돼야 산재로 인정되는 현행법에서 산재의 범위를 출산까지 넓혔다는데 큰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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