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난 시기에 임대주택에서 맨 몸으로 쫓겨난 새터민·다문화가정의 사연

임대료·관리비 체납으로 10여년간 둥지 튼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여관 전전
LH, "다른 임차인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며, 두 번의 기회 줬다"
새터민, 직업과 주거문제 등 정보와 지식 어두워 한국에 정착하는데 어려움 많아

  • 기사입력 2020.06.03 18:20
  • 최종수정 2020.09.14 11:54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사진출처=국민청원 갈무리)

임대주택에서 쫓겨나 여관을 전전하고 있는 새터민 A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A씨는 지난달 7일 경기도 광명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이 임대주택은 새터민 A씨의 다섯 식구에게 허락된 작은 보금자리였는데 하루아침에 몸에 옷 한 벌 걸친채 길거리로 내쫓긴 것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A씨가 10여년간 임대료와 관리비를 상습적으로 체납해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 LH의 이러한 처사는 가혹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A씨는 러시아에서 연을 맺은 키르기즈스탄 출신의 아내와 2005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현재는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인 아이 셋을 둔 가장으로 먹고 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했다. 하지만 새터민이자 다문화가정이라는 소수자에게 한국에서의 삶이란 참으로 고단하고 피폐했다.

하루벌어 하루먹는 삶이 이어졌고 작년엔 건강도 좋지않아 일을 할 수 없었으며 협력업체까지 부도나 돈도 떼였다. 한국 국적이 없는 아내는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700만원의 벌금까지 냈다. 없는 살림에 벌금마저 버거워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A씨는 A씨와 같은 이들에게 벌금을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장발장은행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10여년 동안 쌓인 것은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였다. 이에 3000만원 가량의 보증금마저 사라졌다.

A씨는 본지 취재진과 통화에서 “LH의 강제 퇴거 명령을 받기 전 날 긴급재난지원금 이라도 받아서 밀린 임대료를 갚겠다고 사정했지만 LH는 듣지 않았다. 강제집행이 있던 날, 집행관과 용역직원이 다짜고짜 들어와 냉장고의 음식 및 아이들의 교복과 교과서, 심지어 신분증까지 다 쓸어 담아 가져갔다. 지금 그것을 찾으려고 해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하는데 주소지까지 말소돼 막막할 뿐이다”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A씨는 “퇴거 당한 후 알게 됐는데 기초생활수급자에게 1억 4000만원 한도내에서 임대료를 대출해 준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런 제도가 있다면 미리 알려주어야 하는데 어디서도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현재 A씨와 가족들은 몸에 걸친 옷 한 벌만 건진채 여관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LH 관계자는 이에 대해 “A씨는 10여년 동안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했다. 이에 법원에서 2016년, 2019년 계고장을 두 차례나 보내는 등 충분히 공지를 했고 강제퇴거집행도 A씨의 사정을 보아 지난 5월까지 미뤄주었다. 또한 지역주민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법원 강제집행 과정에서 있었던 문제는 법원의 소관이며 소송비는 비용징수 비율에 따라 부과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A씨의 문제가 언론에 불거되자 새터민을 돕는 남북하나재단은 A씨의 딱한 사정을 듣고 생활비지원 및 주거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년 7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새터민 모자가 아사(餓死)한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1998년 947명이던 새터민은 2007년 1만 명을 돌파했고, 2010년 2만 명, 2019년 6월 말 기준으로 3만 3022명의 새터민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정착과정에서 구직, 질병, 학업, 가족관계, 인간관계 등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들의 60%는 실업상태이고 일자리를 얻어도 100만 원 이하의 월 소득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가 새터민 정착에 물질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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