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역주택조합 공사 때문에 출입구까지 막힌 울산 보라아파트 피해 상황

울산 남구 지역주택조합, 보라아파트 주 진출입로 폐쇄
민원에 대안으로 마련한 샛길은 너무 좁고 좌회전도 안 돼
노약자·장애인 새 진출입로 이용 시 안전 보장되지 않아
조합 측, “사전 합의했고, 좌회전 신호체계 경찰과 논의 중”

  • 기사입력 2020.09.16 19:03
  • 최종수정 2020.09.17 13:43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울산 보라아파트 주 진출입로 폐쇄를 알리는 현수막 (사진=환경경찰뉴스)
울산 보라아파트 주 진출입로 폐쇄를 알리는 현수막 (사진=환경경찰뉴스)

 

아파트 진출입로 폐쇄 작업을 진행 중인 지역주택조합. (사진=환경경찰뉴스)

“집이 코앞에 있는데 갑자기 이 길로 갈 수 없데요. 도로를 폐쇄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더라고요..”

공사판이 들어서면서 매일 다니던 아파트 출입구가 하루아침에 막혀버렸다. 아무런 대비 없이 생활권을 빼앗겨버린 주민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현재 울산 남구 번영로에 위치한 보라아파트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이곳의 한 지역주택조합사업 공사가 진행되면서 6월 10일부터 보라아파트 주 진출입로였던 번영로 30길이 폐쇄됐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집을 코앞에 두고도 약 140m 정도 떨어진 번영로 16길로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보라아파트를 향하는 번영로 16길은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이다. 이 길로 300m 정도를 오르내려야만 아파트에 도달할 수 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석 달이 넘도록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기존 주 진출입로와 140m 정도 떨어진 번영로 16번길. 이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로 300m를 가야 아파트가 나온다. (사진= 네이버지도 갈무리)
기존 주 진출입로와 140m 정도 떨어진 번영로 16번길. 이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로 300m를 가야 아파트가 나온다. (사진= 네이버지도 갈무리)

주 진출입로 폐쇄, 사전 협의·공지 있었나?

아파트 입주민대표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과 남구청은 도로를 폐쇄하기에 앞서 주민들에게 어떤 사전 공지도 하지 않았다. 윤동상 보라아파트 입주자대표는 “아무 불편함 없이 잘 다니던 길을 사전에 어떤 공지와 협의도 없이 막아버리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조합 관계자는 “도로 폐쇄 조치 이전에 보라아파트 출입구의 위치 이동 또는 변경과 관련해 입주민대표와 합의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사를 위해 철거작업이 진행됐던 당시에도 이 공사가 추후 아파트 출입구까지 막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주민들이었다.

조합은 사업계 승인을 받을 때 국공유지인 해당 도로를 매입하고, 구청과의 협의 끝에 도로를 폐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구청 관계자는 “사업부지에 대해서는 조합과 구청의 합의로 이뤄지는 게 맞다”라고 전했다. 도로 폐쇄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볼 당사자는 보라아파트 주민들이었다. 그러나 구청은 정작 주민들의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이를 당연한 절차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주 진출입로가 차단된 모습 (사진=환경경찰뉴스)
주 진출입로가 차단된 모습 (사진=환경경찰뉴스)
옥상에서 바라본 보라아파트 주 진출입로 폐쇄 장면. (사진=환경경찰뉴스)
옥상에서 바라본 보라아파트 주 진출입로 폐쇄 장면. (사진=환경경찰뉴스)

불편해도 돌아가세요~

그렇다고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졌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다. 길을 잃은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조합 측이 생각해낸 것은 새로운 진출입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불편해도 돌아가라는 식’이었다. 조합 측은 기존 진출입로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신화로와 연결된 좁은 샛길을 확장했다.

넓힌다고 넓혔지만, 이 샛길을 차들이 많이 다녀야 하는 진출입로로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 한 대조차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이 길은 대도로 변에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신화로 여천오거리 방면에서 진입하는 차량의 경우 보라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려면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해당 구간은 좌회전이 불가능한 곳이다. 불법 좌회전을 하거나 먼 길을 돌아 유턴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보라아파트 주민들은 이 구간에 좌회전을 할 수 있는 신호체계와 반사경 등을 요구했지만, 조합 측은 이마저도 늦장이었다. 도로가 막힌 6월부터 지금까지 3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작은 반사경조차 설치되지 않았다. 윤 대표는 “그렇다고 우리가 우회도로를 만들거나 신호를 설치할 수도 없지 않은가”라며, “미리 협의한 뒤 불편을 최소화하는 게 조합과 시공사의 도의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조합 관계자는 “현재 신화로 쪽 진입로 개선을 위해 신호체계 변경과 관련해서 경찰과 협의 중에 있다”라고 전했다.

조합 측은 기존 진출입로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신화로와 연결된 좁은 샛길을 확장했지만, 주민들 입장에서 진출입로로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진=환경경찰뉴스)
조합 측은 기존 진출입로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신화로와 연결된 좁은 샛길을 확장했지만, 주민들 입장에서 진출입로로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진=환경경찰뉴스)

노약자·장애인에게는 너무도 위험한 길

아파트 주민을 태우기 위해 오는 택시들은 출입구가 막히다보니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기 일쑤다. 배달원들 역시 아파트 입구를 찾다 못해 전화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마음 편하게 배달음식도 시켜 먹지 못한다. 7월경에는 주말 철거작업을 진행하면서 보라아파트 상수도관이 파열되고 필터 샤워기가 오염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주민들은 이틀 동안 물도 제대로 사용 못 했다. 조합 측과 철거용역 측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윤 대표는 “이 정도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참고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그가 노심초사하고 있는 문제는 주민들의 안전이다.

보라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자식들이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통해 학교에 다니는데 좁은 길에 차가 드나드는데도 아무 안전조치조차 돼 있지 않아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보라아파트에는 노년층과 장애인 세대가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300m를 더 돌아간 뒤 그것도 위험하고 좁은 길을 이용해 아파트를 왔다 갔다 한다. 언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는 환경이다.

윤 대표는 “보라아파트에는 84세대가 살고 있다. 6백여 세대의 거대한 지역주택조합을 상대하려다 보니 어렵다”라며, “그래도 최소한의 생활 보장권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얘기했다. 현재 보라아파트 입주민 중 95%가 의견을 모아 물적·정신적 피해 보상을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7월경, 주말 철거작업으로 인해 보라아파트 상수도관이 파열되고
7월경 진행된 주말 철거작업 시 보라아파트 상수도관이 파열되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세탁물 오염. (사진=환경경찰뉴스)
7월경, 주말 철거작업으로 인해 보라아파트 상수도관이 파열되고
7월경 진행된 주말 철거작업 시 보라아파트 상수도관이 파열되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샤워 필터기 오염. (사진=환경경찰뉴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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