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동물 백과사전] 인간에게 집 뺏기고 ‘느긋한 미소’ 잃어버린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

IUCN 적색목록 위기(EN)종 분류
2012년 기준 79마리밖에 안 남아

  • 기사입력 2020.09.22 18:20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사진=(좌)시나, (우)애니메이션 '주토피아')

“안~~녀엉~~~하~~~세~~~요~~. 저~~느은 나~~아~~무우~~느을~~보~~입~~~니이~~~~다아”

듣고만 있어도 속이 답답해지는 이 대사의 주인공은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플래시’다. 느릿느릿한 말과 행동으로 개그감을 뽐내 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독차지하는 캐릭터다.

이번에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의 기반이 된 동물,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얼룩덜룩한 회갈색의 몸에 납작한 얼굴, 속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 없는 듯한 표정을 항상 짓고 다닌다. 이미 해탈한 듯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인 군자같기도 하다.

빈치목 세발가락나무늘보과에 속하는 이 동물은 몸길이 48.5~53cm 정도에 무게는 3kg 정도 나간다. 잘 알려져 있듯이 나무늘보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포유류다.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 가는 데 평균 속도 시속 900m로 움직인다.

나무늘보는 종이 다양하지 않다.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도 현존하는 4종 중 하나다. 이 종은 남아메리카 파나마에서 17km 떨어진 에스쿠도섬의 붉은 맹그로브 숲에서 서식한다.

맹그로브 숲은 아열대나 열대의 해변 등에 발달하는 숲이다. 거친 나무들이 복잡하게 얽혀 밀림 지역이다.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는 이런 위험한 야생에서 지내면서도 하루 15~18시간 잠을 자며 느긋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좀처럼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나뭇잎을 뜯어 먹고 산다. 배변 활동도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다. 먹는 양도 많지 않으니 한 번 식사를 끝내면 한 달 이상 소화시킨다.

심지어 짝짓기에 필요한 5초의 시간마저 귀찮아, 평생 독신 생활을 꿈꾸는 녀석들도 있다. 나무늘보 개체 수가 현저히 줄고 있지만, 이를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06년부터 적색목록에서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를 ‘위기(EN)’종으로 분류해 보호하고 있다. 2012년 발표된 세상에서 가장 위험에 처한 100종에도 들어가 있는 가엾은 동물이다.

생태계에 개체 수가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다. 2012년 마지막으로 확인된 개체 수는 79마리에 불과했다.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가 사는 에스쿠도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지만, 종종 어부와 잠수부, 농부 등이 침입하곤 했다. 어로와 사냥, 벌목을 하기 위해서다. 이후 카지노 등의 관광 인프라가 개발되면서 큰 규모의 숲이 훼손됐다.

서식지를 잃은 나무늘보들은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느린 행동과 낮은 번식률 때문에 서식지 파괴는 이들이 멸종하는 데 있어서 치명적이었다.

피그미세발가락나무늘보는 그동안 이렇게 살아왔다. 생태계가 순리대로 흘러갔다면 지금의 평화가 깨질 일은 없었다. 지역 공동체와 파나마 야생동물보호국은 국내외 과학 공동체와 협력해 다시 이들의 느긋한 미소를 보기 위해 보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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