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량 상토’ 팔고 등 돌린 농협...“농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장흥농협, 농가에 ‘무등록’ 불량 상토 판매
표기 산성도보다 실제 훨씬 높아 보증표시 위반까지
비료관리법 배제하고 상토학계 기준 내민 법원
피해 농민 A씨 “농협, 재판부에 거짓 자료까지 제출해”

  • 기사입력 2020.10.29 17:46
  • 최종수정 2020.11.02 12:53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장흥농협에서 구매한 불량 상토 사용 후 피해를 입은 A씨 농가의 작물.(사진=환경경찰뉴스)
장흥농협에서 구매한 불량 상토 사용 후 피해를 입은 A씨 농가의 작물.(사진=환경경찰뉴스)

“농민을 도와주고 살려야 할 농협이 도리어 농민을 죽이고 있다”

“지역 농협 발전을 위해 상토를 사용해달라”는 농업협동조합(이하 농협) 직원의 부탁에 못 이겨 상토를 구매한 농민들은 그간 잘만 됐던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농협이 등록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불량 상토를 지역 농민들에게 판매하고 일체 책임을 부인하며 원성을 사고 있다.

잘 나가던 화훼농가에 불 지른 농협의 ‘무등록 상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소재의 한 화훼농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A씨는 5년 전 몇몇 다른 농민들과 함께 지역 농협인 장흥농협 직원으로부터 상토를 구매했다. A씨는 “농협 담당자와 화훼작목반 반장이 그 상토를 사용해줄 것을 부탁해 구매하게 됐다”라며, “만약 상토 때문에 농사가 피해를 입을 시 업체가 손해배상을 해 준다는 계약서까지 작성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는 장흥농협에서 공급받은 이 상토를 사용하고 얼마 후 키우던 작물에서 이상 증상을 발견했다. 싱싱하게 펴야 할 꽃들의 잎과 뿌리가 갈색으로 변하더니 금세 시들어버렸다. 더는 상품 가치를 논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A씨는 “우리는 당초 농사를 지으면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농가인데 이 불량 상토만 쓰면 농사가 망한다”라고 토로했다. 피해자는 A씨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함께 상토를 구매했던 3명의 농민 역시 작물에 큰 손해를 입고 그 원인이 상토에 있음을 주장했다.

장흥농협에서 구매한 불량 상토 사용 후 피해를 입은 A씨 농가의 작물.(사진=환경경찰뉴스)
장흥농협에서 구매한 불량 상토 사용 후 피해를 입은 A씨 농가의 작물.(사진=환경경찰뉴스)

장흥농협이 농민들에게 판매한 해당 상토 ‘쿠드라스’는 사실 문제가 많은 제품이었다. 특히 등록 표시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무등록 상토’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피해 농민들의 공분을 샀다. 검찰은 장흥농협이 비료수입업 신고를 하지 않은 ㈜지인앤으로부터 상토를 수입하고 판매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비료관리법상 상토는 수급 조절과 가격 안정을 위해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공급될 수 있다. 만약 농협으로부터 공급된 상토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농협은 대통령령에 의해서 그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

농협도 이 부분을 인정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은 철저한 관리를 통해 농가에 상토를 공급하고 있다. 무등록 상토가 있고 그로부터 손실이 확인된다면 책임져야 할 사항”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의 농협은 언행불일치였다.

검찰은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검찰에 따르면 장흥농협 대표와 실무담당자는 농민들에게 판매한 상토를 비료가 아닌 단순 흙이라 생각했다. 원래 상토는 작물 재배를 위해 사용되는 흙을 가리키지만, 최근 다양한 비료들과 섞여 판매되면서 정부는 상토를 비료관리법상 관리되고 있는 비료의 범위에 포함했다. 검찰은 이를 무지했던 이 대표와 농협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기소유예를 결정했다.

일이 커지자 장흥농협은 비료수입업 미등록 업체 지인앤으로부터 해당 상토의 거래를 끊었다. A씨는 “일부 농가는 지금도 미등록 업체의 상토 때문에 같은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농촌진흥청은 그냥 방치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민원이 있으면 현장을 나가 조치를 하는 부분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비료 업체의 신고 여부를 감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시·군에서도 업체 등록 관리를 하므로 아직 정기 감시의 필요성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비료관리법상 상토는 수급 조절과 가격 안정을 위해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공급될 수 있다.(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비료관리법상 농협으로부터 공급된 상토에 사고가 발생한다면 농협은 대통령령에 의해서 그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사진=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의정부검찰청 불기소결정서. 검찰은 문제의 상토가 무등록 제품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장흥농협과 업체에 기소유예를 내렸다.(사진=환경경찰뉴스)

‘농협발 거짓말 상토’ 드러났는데도 비료관리법 무시한 법원

문제의 상토는 비료관리법상 보증표시를 위반한 제품이기도 했다. 이 상토를 사용했을 때 작물들이 자꾸 시들어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상토의 산성도는 작물 재배에 있어 중요한 조건이 된다. 장흥농협이 농민들에게 상토를 팔았을 당시 제품 포장지에는 산성도(pH)가 5.5~6.0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A씨를 비롯한 피해 농민들이 여러 농업기술센터에 의뢰해 산성도를 측정한 결과 7.01~7.2로 나타났다. 포장지에 표기된 산성도와 큰 차이가 있었다. 이는 비료관리법상 보증표시 및 판매 관리 위반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실형을 받을 수 있는 위중한 일이다.

법원은 농업기술센터의 측정 결과를 배제하고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결과를 내밀었다. 농촌진흥청이 측정한 해당 상토의 산성도는 6.6~6.9였다. 이 역시 포장지 표기 산성도를 훨씬 넘는 수치였지만 법원은 다르게 해석했다. 상토학계 기준상 A씨가 키우는 작물의 적정 산성도는 5~7이기 때문에 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상토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A씨는 “비료관리법은 정부가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차례 개정을 거쳐 만든 법이다. 떡하니 존재하는 관련 법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다른 기준을 들어 판단한 법원의 저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장흥농협이 판매한 불량 상토 '투드라스'.(사진=환경경찰뉴스)
장흥농협이 판매한 불량 상토 '투드라스'. 포장지에는 산성도(pH) 5.5~6.0으로 표기됐지만, 농업기술센터 측정 결과 7.01~7.2가 나왔다.(사진=환경경찰뉴스)

또 법원은 장흥농협으로부터 이 상토를 구매한 다른 30여 명은 피해를 신고하지 않은 점을 언급했다. A씨를 포함한 4명의 피해 농민들의 작물에는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적용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재판이 시작되자 농협은 상토를 사용했다는 30여 명의 명단을 임의로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다. 하지만 이들은 극히 소량만을 사용한 농가다. 이 상토를 가장 많이 쓴 우리 4명만 피해가 극심하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A씨는 “이젠 다 포기하고 싶다. 농가를 위해 있어야 할 농협이 잘살고 있는 농민의 삶에 들어오더니 완전히 나락 끝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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