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시한부 판정받은 엄마의 전재산을 편취한 의료기판매업자

의료기 판매업 종사자에게 2억대 편취 당해
시한부 판정 받은 사람 낫게 해주겠다고 접근
피해사례만 2~3건…검찰 “사기 입증 어려워”

  • 기사입력 2020.12.02 17:23
  • 최종수정 2020.12.02 19:12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의료기 판매업 종사자로부터 사기 피해를 주장하는 내용의 청원글.(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사기를 당하기는 쉬워도 사기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법조계에서는 흔히 나오는 말이다.

우리나라 대표 검찰청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기사건 처분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형법상 수사가 이뤄진 사기 범죄 총 22,457건 중 기소된 건은 5,043건이며 이중 구속된 건은 738건에 불과했다. 불구속 상태지만 유죄혐의를 받고 재판대에 오르는 경우까지 모두 합쳐봐도 총 3,460건으로 전체 사건 중 15%에 그쳤다.

이토록 사기를 당했다며 호소하는 피해자들은 많은데 왜 사기죄 혐의를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A씨, “의료기 매장 사장한테 2억 3천만 원 상당 사기당해”

지난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 의료기기 판매업 종사자로부터 아픈 어머니가 전재산을 편취당하고 성착취까지 당했다며 피해를 주장하는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과 어머니 A씨는 K헬스케어 대표이사와 매장 관계자들이 총 2억 3천만 원 상당을 탈취했다며 사기죄로 고소했지만 최근 검찰로부터 불기소 판정을 받았다.

A씨가 K헬스케어(구 S헬스케어) 대표이사 L씨와 직원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3월 초 당시 경북 경산시에 위치했던 S헬스케어 의료매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과거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A씨는 전국에 내로라하는 병원들은 다 다녀봤지만 고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반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들어갔던 이 의료매장에서는 충분히 후유증을 고칠 수 있다며 A씨에게 희망을 주입했다.

L씨와 직원들은 처음에 제품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친절을 베풀더니 A씨가 올때마다 의료기계 물리치료, 마사지, 건강식품 등을 제공하며 정성껏 돌봤다. A씨는 사장과 직원들의 지극한 친절에 점차 마음을 열었고 얼마 안 지나 완전히 신뢰하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이후 3개월 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A씨가 거동이 불편해 매장을 방문하지 못하자 직원 몇몇과 함께 A씨 자택으로 찾아온 L씨는 사업을 하는데 사용할 5천만 원을 빌려주면 3개월 후 갚겠다고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던 A씨는 같이 온 직원들도 책임을 지고 확인서에 서명하겠다고 하자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돈을 건네줬다.

A씨가 K헬스케어로부터 구매한 건강기능식품 및 마사지 관련 제품.(사진=환경경찰뉴스)
A씨가 K헬스케어로부터 구매한 건강기능식품 및 마사지 관련 제품.(사진=환경경찰뉴스)
A씨가 K헬스케어로부터 구매한 건강기능식품 및 마사지 관련 제품.(사진=환경경찰뉴스)
A씨가 K헬스케어로부터 구매한 건강기능식품 및 마사지 관련 제품.(사진=환경경찰뉴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 L씨는 사업을 핑계로 돈을 갚지 않았고 2018년 4월 도리어 2,300만 원이 더 필요하다며 이를 빌려주면 그 전에 빌린 5천만 원과 함께 갚겠다고 제안했다. 이 말을 믿은 A씨는 다시 대출을 받고 돈을 빌려줬지만 나중에 L씨는 말을 바꾸며 이마저도 변제하지 않았다. A씨는 “돈을 안 갚길래 차용증을 작성해 달라고 하자 갑자기 L씨는 2,300만 원은 지금까지 받은 치료비로 받은 것이라며 갚지 않았다. 치료 내역서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았다”라고 토로했다.

L씨의 차용 요청은 더 나아가 투자 요청으로 바뀌었다. A씨가 계속 변제 독촉을 하자 L씨는 2019년 5월 이전 5천 만 원과 더불어 1억 5천만 원을 더 투자해 함께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베트남에 의료기기 매장 운영을 계획중이라며 법인 설립하는 데에 투자할 시 대출이자 8%와 수익금 7%, 상무이사 직함까지 주겠다며 유혹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씨가 사업을 잘 모른다며 거절하자 L씨는 그에게 사업자 명의를 빌려 A씨 이름으로 된 통장 계좌와 카드, 공인인증서가 설치된 핸드폰까지 개설해 직접 보관하며 사용했다.

A씨는 “투자를 하면 상무이사 직함에 평생 수익이 보장된다느니, 허리통증은 추운 한국보다 따뜻한 베트남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더 좋다느니, 곁에 일하는 사람을 두고 손가락 까딱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느니 온갖 달콤한 말들로 유혹했다.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나에게 먼저 기회를 주는 것이라길래 투자확인서를 작성하고 땅을 담보로 대출받아 1억 6천만 원을 건넸다”라고 한탄했다.

이에 대해 L씨는 “A씨를 속여서 차용 및 투자를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현재 베트남에서 의료기기 매장 운영을 준비중이며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에 나가지 못하고 있을 뿐 A씨 말고도 여기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많다”라고 반박했다.

A씨는 가족들과 상의 끝에 작년 8월 고소를 결심하고 추진했지만 검찰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고 항고 역시 기각됐다. 투자 조건으로 매달 받기로 한 160만 원 역시 12월부터 못 받고 있다.

검찰은 ▲5천만 원을 빌려주고 변제기한 지났는데도 추가로 차용해준 점 ▲2,300만 원에 대한 투자확인서가 없다는 점 ▲1억 6천만 원 투자 관련 베트남 의료기 매장 사업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자료가 확인된 점 등을 들어 L씨와 직원들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L씨는 현재 기존 경산 소재 S헬스케어를 접고 울산에 K헬스케어 의료기기 매장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A씨에 따르면 L씨는 울산과 경산 내에서 간판을 번갈아 바꿔가며 매장을 계속 옮겨다니고 있다.

A씨는 L씨 등 의료기기 판매업 종사자들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사진=환경경찰뉴스)
A씨는 L씨 등 의료기기 판매업 종사자들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사진=환경경찰뉴스)

A씨의 사연을 전한 청원인은 “어머니에게 그들은 몸을 낳게 해줄 신같은 존재였다. 치료를 받고 싶어서 그 의료매장을 찾았던 건데 L씨 등은 처음부터 치료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뜯어내기 위해 우리 엄마에게 접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분노하며, “우리 어머니 외에도 피해자가 몇몇 더 있지만 다달이 나오는 돈 조차 받지 못할까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와 똑같이 당하는 피해자들이 더 나올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사기죄, 기망행위 입증 현행법상 어려워

A씨의 사례와 같이, 재산상의 손실은 명확히 드러나는데도 사기죄가 아니라는 검찰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의 사례가 다분하다. 전문가들은 사기죄의 구성요건 요소 중 하나인 기망행위를 입증하는 것이 현행법상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법률사무 승인 소속 형사전담변호사 김세라 변호사는 “사기죄의 기망행위가 성립되려면 변제 의사나 변제 능력에 대한 기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사실관계와 증거 관계에 따른 검사의 몫이다”라며, “무엇보다 폭넓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한데 형사사건은 죄형법정주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확대해서 해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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