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나가는 재활용 분담금 86억 원…조직 범죄 정황 포착

검찰 회수·재활용업체 대표, 감독 기관 공무원 등 관련 인물들 기소

  • 기사입력 2019.05.09 11:37
  • 최종수정 2019.05.09 13:04
  • 기자명 이의정 기자
(사진출처=수도권매립지자원공사)
(사진출처=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정부가 실행하는 생산자책임 재활용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의 허점을 이용한 조직적 범죄가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정부 감독기관이 이 범죄에 가담하여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8일 전주지검은 있지도 않은 페비닐 42400톤을 처리한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만들어 재활용분담금 86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로 재활용업체 대표10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 10명 중 8명은 구속하고 2명은 불구속했다.

또한 이들의 범죄를 알고도 방치한 한국환경공단 직원 2명과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이하 유통센터) 직원 1명 등 3명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EPR은 생산자가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납부한 분담금을 재활용업체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이다. 정부는 재활용 제품의 회수와 재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2003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제대로 관리, 감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기소된 폐비닐 회수·선별업체와 재활용업체의 대표들은 수도권과 호남지역의 최대 규모의 업체를 운영해왔다. 이들은 있지도 않은 폐비닐을 재활용업체에 넘긴 것으로 허위 계량 확인서를 작성해 분담금을 가로챘다. 회수·선별업체 대표 A씨(59)는 2015년부터 2018년 동안 22억 7000만 원(2만 7600톤 분량)을 가로챘으며 또 다른 회수·선별업체 대표 3명도 분담금 13억 7000만 원(1만 4800톤 분량)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재활용업체 대표 B씨(58)는 비슷한 시기에 회수·선별업체로부터 폐비닐 1만 2725톤을 받지 않았는데도 이를 가지고 재생원료 등을 생산한 것처럼 신고해 지원금 21억 4000만 원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재활용업체 대표 3명도 이런 식으로 지원금 28억 원(1만 8920톤 분량)을 챙겼다.

이들의 범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관리 감독 기관도 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환경공단 호남지역본부 과장과 팀장은 업체의 잘못을 확인하고도 오히려 2016년 7월 현장 조사 때 업체의 시간당 재활용 가능량을 부풀려 보고서를 작성했다. 해당 과장은 지난해 10월 다른 업체로부터 지원금 단가가 인상되도록 품질 등급을 높여 달라는 청탁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통센터 팀장은 각각 2017년 12월과 2018년 2월 회수·선별업체의 지원금 편취 사실을 알고도 무혐의 조치하거나 제재를 낮춰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범죄의 전말은 2018년 10월 환경부가 의뢰한 전주지검의 수사로 드러났다. 환경부는 전북 정읍에 있는 재활용 성형제품 제조업체를 오가는 트럭의 수가 서류에 적힌 수보다 현저히 적은 것을 포착했다.

한편 환경부는 적발된 10개 업체에 대해 계약을 해지하고, 편취한 분담금도 환수할 예정이다. 또 이와 같은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최근 3년간 폐비닐 회수·선별 및 재활용업체 261곳에 대해 오는 7월까지 전수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환경부 최민지 자원재활용과장은 “실적을 임의로 조작하지 못하도록 전국 448개 선별·재활용업체에 차량자동계량시스템을 구축하고, 재활용품을 거래할 때 입·출고량이 전산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유통센터와 한국환경공단에 전송되도록 할 계획”이라며 “사업장 계량대 주변에는 차량번호와 적재함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폐쇄회로TV(CCTV)도 달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이러한 행태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이번 사건에 가담한 업체들은 전국 1위를 차지하는 곳들이다.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업체들이 EPR 제도의 허점을 악용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회수업체와 재활용업체, 감독 기관이 먹이사슬처럼 얽혀 있어 한 사람이 자백하면 나머지 허위 거래가 드러나는 구조”라며 “생산자가 법률에 따라 분담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업자들이 가로챈 돈은 공공 재원으로 볼 수 있고,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환경경찰뉴스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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