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핫라인] 해외 주요국의 디지털 성범죄 제도적 대응 실태-Ⅰ.미국

‘불법촬영=사생활 침해’ 규제…불법유포 피해 심각성 및 처벌 공백 지적
불법유포에 중점을 둔 개념 정립 노력…사이버인권기구 활동 및 청소년 예방교육 실시 등

  • 기사입력 2019.07.21 15:10
  • 기자명 임영빈 기자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2017년 8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킹 컨퍼런스인 데프콘(DEF CON)에서 스케아 에케르트(Svea Eckert)와 안드리아 드베스(Andreas Dewes)는 인터넷에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등 우리의 모든 활동 내역이 쉽게 공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개인신상정보가 없는 인터넷 활동자료라도 다른 정보와 연결되면 쉽게 개인신상이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범죄 사례는 2000년대 들어 급증했으나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부터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행위가 과거에는 특정 불법사이트에서의 음란물 공유나 성매매 알선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적 영상물의 촬영이나 옛 연인과의 성행위 촬영물의 동의 없은 유포행위 등이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흔히 ‘몰카(몰래카메라)’,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불리는 이러한 유형의 성범죄는 반영구적이고 무제한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피해와 지속성·확장성이라는 요소가 있어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비단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법적, 사회적, 정책적 대책 마련을 위한 시도는 현재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에 해외 주요국가의 디지털 성범죄 현황 및 대응 등을 살펴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와 비교·분석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살펴볼 나라는 미국이다.

불법유포 개념 정립 노력 중인 미국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와 유사하게 미국에서도 역시 디지털 성폭력(digital sexual violence)라는 용어가 있다. 단, 미국에서 불법촬영의 문제는 사생활 침해 범죄의 한 유형으로 규제되어 았다. 반면 불법유포의 문제는 최근 피해의 심각성과 처벌방안의 공백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에 과한 입법 논의 및 대책 마련이 한창이다.

2018년 기준 미 전역을 대상으로 한 공식적 범죄통계는 아직 나오지는 않았으나 관련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설문 조사 및 사례 조사 등은 실시되고 있다.

지난 2017년 사이버인권보호기구 조사팀은 비동의 음란물에 관한 현황을 조사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조사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미국 50개 주(州) 인구비례로 추출된 18세 이상 3044명을 대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사진출처=방송통신심의원회)
(사진출처=방송통신심의원회)

상대방의 동의 없이 자신의 성적 이미지 또는 영상물이 유포되거나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냐는 질문에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 성별에 따른 비율은 남성이 9.3%, 엿성이 15.8%였다. 타인의 동의 없이 그 사람의 성적 이미지 또는 영상 콘텐츠 유포 등 가해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 질문에는 남성 응답자의 7.4%, 여성 응답자의 3.4%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불법촬영 및 불법유포에 대한 미국 각 주의 대응

미국 각 주의 형사 관련 법률에서는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사이버 관음행위와 함께 동의 없는 촬영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일례로 애리조나 주에서는 촬영에 관한 형법 규정은 장비 사용 여부, 범행 횟수, 피해자 식별 가능성에 따라 처벌을 각각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뉴욕 주의 경우, 개인의 동의없이 성적 영상의 불법유포에 대한 형사법이 입법되지 않았으나 허가 없는 촬영에 관해서는 본신 또는 타인의 오락, 여흥, 성적 흥분, 성적 만족 등 등 불법촬영의 다양한 목적을 범죄 구성요건에 포함시킨다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관음 및 몰래카메라 촬영을 ‘치안문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연방 차원에서는 비디오관음방지법(Federal Video Voyeurism Prevention Act)을 통해 동의없이 사적 영역의 화상 정보를 취득(capture)하는 행위를 규제한다. 해당 법률은 불법촬영의 보호법익을 개인의 사생활로 보는 측면이 강하며 일반적인 성범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불법유포의 경우, 비동의 성적영상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첫 입법은 지난 2004년 뉴저지에서 이뤄졌다. 이 법률은 동의 없이 성적 이미지나 기록물의 열람, 기록과 함께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으며 ‘유포’에 출판, 배포, 공유 또는 기타 수단을 이용해 성적 영상물을 인터넷에서 접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행위를 포함했다.

그 다음 입법은 2013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이뤄졌다. 심각한 감정적 고통을 줄 의도로 비동의 성적 영상을 유포하고 피해자가 실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을 것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했으며 이를 6월 이하의 징역과 1000달러의 벌금의 부과가 가능한 경미범죄로 규정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그러나 이 법률은 미국 사회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두 가지는 △피고인의 감정적 가해의사에 대한 검찰의 입증 책임이 너무 큼 △설사 입증에 성공한다하더라도 처벌이 너무 경미함이다.

한편 주(州) 법을 입법했으나 사법부에 의해 무효화된 경우도 있다. 애리조나 주가 이에 해당된다. 애리조나 주는 2014년 ‘영상 속 인물이 유포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타인의 나체 또는 특정한 성적 행위에 관련된 사진, 비디오테이프, 필름 또는 전자기록을 의도적으로 유포, 전시, 배포, 출판, 광고 또는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듬해 애리조나 주의 지방법원 판사는 해당 법률의 위헌성을 이유로 이 법의 적용 중단을 명했다. 당시 판사는 ”유포에 대한 동의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이라는 문구로 이 규정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라고 지적했다.

2013년 이전까지 성적 영상 유포에 관한 처벌 규정을 형사법에 규정한 주는 뉴저지와 알래스카, 텍사스 3개 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시점부터 각 주의 입법적 노력이 계속돼 2018년 기준 40개 주 및 워싱턴 DC가 이와 관련한 형사법을 마련했다.

연방 입법을 위한 노력

비동의 성적 영상에 관한 입법이 각 주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후 효과적 제재를 위해 연방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뤄지다가 지난 2016년 비동의 성적 영상의 유포를 범죄화하는 연방 법률안이 최초 발의됐다. 법률안은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피해자에 대한 피해대책을 마련하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두었다.

당초 2015년 법률안 초안에서는 웹사이트와 검색 엔진 운영자가 비동의 성적 영상에 관한 신고를 받으면 48시간 이내에 게시물 삭제 요구를 처리하고 자체적으로 범죄 관련 영상을 모니터링해 삭제 및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는 등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과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로부터 반발을 사게 되자 2016년 안에서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의 모니터링 의무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업계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피해구제를 위한 제도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최고의 헌법적 가치로 보장하는 만큼 정부 주도 하의 유해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심의나 강제적 규제를 시행하기보다는 최소한의 개입 하에 법령을 통한 원칙을 제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통신 관련 정책에 관한 담당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 역시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직접적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

단, 인터넷 공간을 매개로 불법·유해콘텐츠로부터 인간의 존엄성 및 청소년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공익이 상호 충돌하면서 최소한의 규제는 불가피하게 됐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2001년 시힝된 아동인터넷보호법(Children’s Internet Protection Act)에 근거해 연방통신위원회가 공립 학교 및 도서관에 인터넷 접속 차단이나 필터링과 같은 기술보호조치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동포르노 및 저작권을 침해하는 콘텐츠가 미국 내에서 호스팅되는 경우, 법률 위반으로 법원 명령이나 유사한 법적 절차를 통해 삭제하는 것과 소셜미디어 회사 및 기타 콘텐츠 제공업체가 이용 약관을 위반을 이유로 콘텐츠를 삭제하는 이외에 일반적인 불법 유해 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동의 성적 영상물 유포에 관한 입법적 시도에 대해 일부 표현의 자유 옹호자와 학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반(反)역사적 시도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과잉범죄화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비동의 성적 영상이 보호의 대상이 되는 ‘표현’인가 하는 점에 대해 반론도 만만찮다. 연방대법원이 아동 포르노, 사기, 명예훼손 등 특정 표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예방 및 피해구제를 위한 미국 내 활동

(사진출처=사이버인권기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출처=사이버인권기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에서는 비동의 성적 영상 유포의 피해자였던 홀리 제이콥스(Holly Jacobs)가 2012년 ‘리벤지 포르노 종결(End Revenge Porn)’ 캠페인을 펼치며 관련 형사 입법을 촉구하던 활동이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 제공과 피해자 지원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이듬해 사이버인권기구가 탄생했다. 사이버안전기구는 사이버 상의 범죄, 특히 비동의 성적 영상의 유포에 관한 기술·사회·법적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법률 외적 대응 방안의 대표격으로는 청소년 교육을 꼽을 수 있다. 앞서 2008년 한 조사에 따르면 문자로 나체사진을 보내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는 청소년 응답자 비율이 20%였다. 상체 탈의 사진까지 가능하다고 응답한 청소년 비율은 40%로 나타났다.

이에 미국 내에서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하는 행위가 불법 유포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심각한 피해를 야기하는 범죄라는 점에 대한 청소년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지속적으로 힘이 실리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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