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24시] 안녕들하십니까?…후쿠시마 지역 외면하는 아베 내각

피해 구제 요청한 후쿠시마 농민 요청 기각한 법원
일본 시민들조차 “아베 눈치 보는 법원” 날선 비판
“도쿄 올림픽은 아베의 정치적 퍼포먼스…주민들에겐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 기사입력 2019.11.01 00:08
  • 기자명 임영빈 기자
지난해 10월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진출처=그린피스)
지난해 10월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진출처=그린피스)

2011년 3월 잇따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재난사고였다. 특히 이전까지 세계의 석학들은 일본은 경제 재건이라는 매우 복잡한 과제를 떠안게 됐으며 이를 쉽사리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8년이 지난 2019년 당시의 예상은 상당 부분 빗나갔다. 가장 크게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인 전력 부족의 경우, 사고 직후 한동안은 국내 절전 운동 및 주변국가로부터 화력 발전 원료 수입에 의존하긴 했으나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또 아베 신조 내각이 적극적 친서방 외교를 통해 G7의 동의를 얻어냈고 이에 힘입어 양적 완화를 시행하자 일본 경기는 적어도 수치만으로 봤을 때는 지진 이전 지표보다 오히려 더 진전되기까지 했다.

소위 ‘아베노믹스’로 통칭되는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에 기인한 결과다.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 경기를 살리고 엔화 가치는 떨어뜨렸다. 그 결과 세계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올라가고 국내 소비 및 수출도 더 늘어나 경기 활성화로 이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기는 했으나 그 이후 아베 내각이 ‘수출향상’ 및 ‘내수경기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성공적으로 잡으면서 원전 피해를 상회하는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사고가 더 크게 빗나간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고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뒤집어쓴 후쿠시마 지역 일대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이제 서슴없이 말한다, “일본 정부는 우리를 버렸다”라고.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 당시 고향을 등졌던 주민 중 대다수는 아직도 귀향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주민들이 다시 후쿠시마에 정착하게끔 일방적으로 등을 떠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사고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이 어떠한 고초를 겪고 있는지, 현재 후쿠시마 지역의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아베 내각이 이 일대를 어떻게 생각하고 관리하는지를 다각도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日 법원 “후쿠시마 농지 방사능은 개인 사유재산” 판결

지난 15일 후쿠시마 지방법원은 “해당 농토의 방사능은 도쿄전력 통제를 벗어났다”라며 스즈키 씨가 낸 소송을 기각하는 판겨을 내렸다. (사진출처=NHK 보도영상 갈무리)
지난 15일 후쿠시마 지방법원은 “해당 농토의 방사능은 도쿄전력 통제를 벗어났다”라며 스즈키 씨가 낸 소송을 기각하는 판겨을 내렸다. (사진출처=NHK 보도영상 갈무리)

“후쿠시마 원전에서 날아 흩어진(飛散) 방사성 물질은 이미 흙과 동화됐으니 도쿄전력의 통제권을 벗어났다. 그러므로 방사성 물질 제거 청구를 기각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여파로 방사능에 오염된 농토를 복구해달라는 어느 농민의 호소를 일본 정부와 법원은 “그렇게 해줄 수 없었다”라고 대응했다. 정부와 법원은 해당 농민에게 “해당 토지의 방사능은 이제 당신의 사유재산이니 당신이 알아서 처리하라”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베 내각이 후쿠시마 주민들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 공영방송 NHK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60여㎞ 떨어진 오타마촌(大玉村)에서 거주 중인 농민 스즈키 히로유키 씨의 사연이다.

스즈키 씨는 에도시대부터 6대째 이곳에서 살면서 대대손손 벼농사를 지어왔다. 약관의 나이에 농사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스즈키 씨는 34살 때 동생 부부와 함께 농업 법인을 설립해 자체 브랜드까지 선보인 의욕 가득한 청년 농업인이었다. 스즈키 씨는 직접 쌀을 판매함은 물론 쌀 가공품도 제조·판매하는 등 순탄하게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원전사고 이후 방사성 물질이 농토를 오염시키면서 조상 대대로 지켜왔던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잃었다. 애초부터 일본 정부의 제염 방식은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정부는 오염된 토양 바로 아래 흙을 파내 오염물질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겉면의 흙과 바꾸는 식으로 작업을 실시했다.

6대째 후쿠시마 지역에 살면서 농업을 가업으로 삼았던 스즈키 히로유키 씨는 지난 2014년 도쿄전력을 상대로 농토에서 방사성 물질을 완전히 제거해달라고 요청하는 소송을 냈다. (사진출처=NHK 보도영상 갈무리)
6대째 후쿠시마 지역에 살면서 농업을 가업으로 삼았던 스즈키 히로유키 씨는 지난 2014년 도쿄전력을 상대로 농토에서 방사성 물질을 완전히 제거해달라고 요청하는 소송을 냈다. (사진출처=NHK 보도영상 갈무리)

결국 원전사고 이후 스즈키 씨의 쌀을 구매하던 소비자 중 80%가 방사능을 두려워하며 거래를 끊었다. 스즈키 씨는 결국 토지에 남아있는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판단해, 원전 관리업체인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지방법원은 이달 15일 “방사성 물질이 흙과 동화됐기 때문에 도쿄전력의 통제르르 벗어났으므로 (스즈키 씨는) 도코전력에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도록 청구할 수 없다”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에 스즈키 씨는 항소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을 두고 일본 시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몇 일본인들은 “일본은 더 이상 법치국가가 아니다” “사법 엉망” “무지의 판결” “민주 국가의 법은 권력의 방종이나 폭력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판결에는) 이런 근본적인 철학조차 없다” “헌법 위반” 등 격하게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후쿠시마 주민들 “정부는 우릴 버렸다”

2012년 1월 28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의 오염 지역 92㎢에 대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을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의 오염 제거 기술로는 방사선량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준치로 낮출 수 없다며 사실상 ‘죽음의 땅’이라고 못박아버린 것이다. 해당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약 11배에 달한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인근 30㎞인 지역 및 계획적 피난구역은 3단계 여행경보(철수권고)가 발령됐으며 사고 발생 8년이 지난 2019년 현재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사진출처=외교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출처=외교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상황이지만 후쿠시마현 주민들은 지금도 “정부나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정부가 가축과 애완동물들에 대한 보호책은 전혀 내놓지 않은 채 사람만 나가라고 한다.” “차라리 고향에서 죽겠다.” 등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지역 아이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급증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방사능 노출에 의한 갑상선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려면 최소 4~5년이 걸리며 심지어 몇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확인되는 경우도 있어 주민들의 공포와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소아의 경우 갑상선암에 걸리는 확률은 전세계적 평균 수치가 대략 20만 명당 1명인데 후쿠시마는 1500~2000명당 1명 꼴이다. 세계 평균보다 10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정부가 피난 지시를 해제했음에도 해당 지역 주민들의 복귀율은 8년이 지나도 여전히 저조하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가장 가까운 오쿠마 지역의 주민 복귀율은 지난 8월 기준 0.6%에 불과하다. 40㎞ 가량 떨어진 이타테도 23.8%로 20%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런데도 아베 내각은 살기 위해 고향을 등진 후쿠시마 지역민들을 강제로 귀향하게끔 그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특히 내년 열리는 도쿄 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이라며 야구 경기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아베 정부에 대해 “정부가 형편에 맞춰 후쿠시마를 이용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아베 총리가 외부에 보여주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 역시 거세게 일고 있다. 도쿄 올림픽부터가 ‘일본 부흥을 알리는 퍼포먼스의 일환’이라며 그것이 실제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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