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코드제로' : 세상을 놀라게 한 항공사건] 하늘에서 공중충돌한 독일 위버링겐 항공사고 (3)

관제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및 통신장비 고장으로 비행기 충돌
우리나라도 항공통행량 급증과 장비의 노후화, 사고 대비해야

  • 기사입력 2020.01.27 22:05
  • 최종수정 2020.09.13 21:47
  • 기자명 고명훈 기자
(사진출처=픽사베이)

2002년에 일어난 독일 위버링겐 사고는 야간 인력 부족으로 두 대의 관제모니터를 동시에 담당하던 관제사의 실수와 장비의 고장이 맞물려 45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총 71명의 탑승자가 전원 사망한 대형 항공사고다. 2017년 애프터매스(Aftermath)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돼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2002년 7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발 바르셀로나행 바시키르 항공(Bashkirian Airlines) 2937편 여객기와, 바레인에서 출발해 기착지인 이탈리아 베르가모에서 이륙해 브뤼셀까지 날아가던 DHL 611편 화물기는 각각의 항공로를 따라서 목적지를 향해 비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두 항공기가 스위스 영공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벌어졌다. 당시 취리히 항공 관제를 맡고 있는 회사는 스카이 가이드라는 스위스 국영회사였으며 그 구역에 배치된 관제사는 단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이 휴식을 취하러 가자 덴마크 출신 관제사인 페테르 닐센(Peter Nielsen) 혼자서 두 구역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당시 관제사는 항공기와 교신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관제 센터와 통신이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제사는 또 다른 비행기 에어로 로이드 1135편을 유도하기 위해 옆자리로 옮겼고 그는 결국 두 자리에서 항공기 3대를 관제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 상황에서 바시키르 2937편과 DHL 화물기를 관제하기는 힘들었다. DHL 화물기는 연료절감을 이유로 고도상승을 요구했고, 관제사는 36,000 ft(약 11 km)까지 상승을 허가했다. 하지만 바시키르 2937편 역시 36,000 ft를 비행중이었다.

이러다보니 양 비행기에선 TCAS(공중 충돌 경보 장치)가 울렸다. TCAS는 두 비행기가 충돌궤도에 있을 경우 TCAS 자체가 상호간 통신으로 어느 쪽이 상승하고 어느 쪽이 하강할지 결정한 후 각각 하강과 상승을 지시함으로써 충돌을 피하게 한다.

이 때 TCAS는 DHL기에게 하강을 지시했고, DHL기는 이에 따랐다. 그런데 DHL기에서 보낸 TCAS의 지시에 따라 하강했다는 메세지를 관제사는 또 듣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비슷한 시간에 관제소에서도 충돌을 피하게 하기 위해 바시키르 2937편에게 하강을 지시한 것이다. 더불어 그는 바시키르 2937편에게 DHL기가 접근함을 알려주기는 했는데, 실수로 방향을 반대로 알려주었다. 결국 두 여객기는 운명의 시간을 불과 몇 초 앞 둔 시점에서야 육안으로 서로를 발견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바시키르 2937편과 DHL기는 독일 위버링겐 상공에서 산산조각이 났으며 바시키르 2937편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하여 69명은 모두 사망했다. 탑승객 60명 중 4분의 3이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 학생이었다. 물론 DHL기에 탑승했던 직원들도 모두 사망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데는 원인이 분명하다. 우선 스카이 가이드라는 국영회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관제사를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다. 당시 2명 이상의 관제사가 반드시 상주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여기에 2명만을 배치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관제사가 적절한 대처를 못한 점도 매우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두 항공기의 경로와 고도로 봤을 때 충돌 가능성이 있음을 감지하고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소홀히 했다.

결국 당시 관제사였던 페테르 닐센은 이 사고로 우울증에 걸려 취리히 근교의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중 2004년 2월, 사고 피해자의 유가족인 비탈리 칼로예프(Vitaly Kaloyev)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당시 사고는 열악한 관제통신 시설과 운영미숙으로 드러난 것이지만 현재도 이런 사고에 안전하지는 않다.

작년 4월에 국토교통부 국민참여위원단은 관계기관을 상대로 한 광범위한 자료 요청 및 검토, 현업 관제사 인터뷰, 인천·제주 등 전국 공항을 직접 주·야간 현장 실사한 결과, 오프라인 집중 토론 등을 토대로 대형 항공안전 사고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국내 항공교통량이 급증하며 한반도 상공에서 전 세계 비행기들이 아슬아슬하게 교차 운행하고 있음에도 국내 항공교통관제 인력은 여전히 국제 권고 인원의 60%에 불과한 후진국 수준임에 우려했다.

무엇보다 제주 공항의 경우, 항공통행량 급증과 높은 피로도에 장비의 노후화까지 겹쳐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에 국민참여위원단은 제2의 독일 위버링겐 항공사고를 막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관제 인력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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