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코드제로' : 세상을 놀라게 한 항공사건] 두 비행기가 충돌한 테네리페 공항 사고 (7)

복합적 요인이 빚어낸 세계 역사상 최악의 항공참사

  • 기사입력 2020.02.24 23:40
  • 최종수정 2020.09.14 14:38
  • 기자명 고명훈 기자
테네리페 공항 (사진출처=픽사베이)
테네리페 공항 (사진출처=픽사베이)

대부분의 항공 사고가 자연 재해나 인재 등 한가지 원인으로 발생하는데 비해 모든 상황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일어난 항공 사고가 있었으니 바로 테네리페 공항 참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 사고는 기장과 부기장의 상명하복의 보수적 문화가 빚은 것으로 후에 조종석의 시스템 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테네리페 공항 참사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에 위치한 로스로데오 공항에서 일어났다. 테네리페 섬은 제주도보다 좀 더 크고 연간 약 5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인기있는 휴양지로 알려졌다.

1977년 3월 27일 17시 6분(현지시각)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의 노르테 공항에서 팬아메리칸(팬암) 항공의 1736편과 이륙 중이던 KLM 네덜란드 항공의 4805편 보잉 747 항공기 2대가 활주로 상에서 충돌해 583명이 사망했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항공기 탑승객이 사망한 사고로 기록된 최악의 참사다.

당시 KLM 4805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14명의 승무원과 234명의 휴양객(어린이 69명 외 다수의 청년 포함)을 싣고 이륙하여 카나리아 제도의 라스 팔마스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이 비행기의 기장은 야콥 펠트하위전 판 잔턴으로 비행경력 1만 2000시간의 베테랑이었으며 KLM의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회사로부터 신망받던 스타 조종사였다. 이에 비해 부기장은 비행 시간이 95시간 밖에 안 되는 햇병아리였다. 

팬암 1736편은 미국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승무원 18명과 승객 382명(승객의 대부분은 은퇴한 노인)을 태우고 이륙하여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경유하여 라스 팔마스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두 비행기는 도착지인 ‘라스 팔마스 공항’이 테러 위협을 받아 폐쇄되는 바람에 인근의 테네리페 섬 ‘로스 로데오 공항’(테네리페노르테 공항으로 개명)에 비상착륙하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스 팔마스 공항의 폐쇄조치가 해제돼 오후 5시쯤 KLM기의 기장은 예정된 도착시간을 엄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이륙 준비를 마치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햇병아리 부기장은 관제탑의 이륙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기장은 부기장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관제탑에 허가요청이나 하라고 명령한다.

부기장은 “KLM은 이륙준비를 마쳤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관제탑에 무선연락을 취했다.이에 관제사는 이륙 이후의 경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무선통신에 혼선이 생겼다. 관제사의 말소리가 계속 끊겼고, 다른 비행기와의 통신이 뒤섞였다.

정확한 교신을 위해 부기장이 관제탑을 다시 불렀는데 그 순간 기장이 끼어들면서 관제탑에 일방적으로 “이륙한다!”고 통보해 버린 것이다. 부기장은 기장의 기세에 눌려 이륙허가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기장이 관제탑에 통보할 때 관제사는 팬암 1736편과 교신 중이었다. 

항공기관사는 팬암 1736편과 관제탑의 교신을 듣고 기장에게  “팬암기가 아직 활주로에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KLM기장은 “아냐. 벗어났어.”라고 일축하고는 이륙절차를 계속 밟아나갔다. 항공기관사도 기장의 강압적 태도에 반박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후 항공기관사도 ‘침묵’했다. 그는 더 이상 관제탑에 팬암기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다.

오후 5시6분, 그날따라 공항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KLM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안개 속에서 팬암기가 나타났다.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곧바로 KLM기의 동체 하부가 팬암기 조종석 뒷편 퍼스트클래스 라운지 윗부분에 부딪혔다. 팬암기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KLM기는 충돌지점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추락했다. 충돌로 두 비행기의 동체가 변형돼 승객 대부분이 탈출할 수 없었다. 비행기 연료가 유출돼 활주로는 불바다가 됐다. 팬암기 승객과 조종사 등 승무원 전원이 숨졌다. KLM기에서 61명의 생존자(부상자)가 나온 것은 기적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항공업계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영어의 사용과 라디오 통신시 명확한 단어의 사용이 강조됐다. "Ok,No"와 같은 짭고 간결한 단어는 "Affirmative,Negative"등 헷갈리기 어려운 단어로 변경됐다.

이륙 허가가 아닌 상황에서는 "Departure"를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실제 이륙허가와 이륙 취소를 지시할 때만 "Take-off"를 사용하도록 바뀌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CRM(Crew Resources Management, 승무원 자원 관리)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엄격한 상하관계로 인해 조직 내 의사소통·정보교환이 차단되지 않도록 상관이 명령을 내릴 때도 반드시 상호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조종석 내의 수직적인 문화가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이다. 또한  항공 사고는 이 착륙 10~20분이 중요하다는 선례도 남기게 됐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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