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코드제로' : 세상을 놀라게 한 항공사건] 축구 유망주 앗아간 뮌헨 비행기 참사 (9)

활주로 살얼음 상태, 기체 이륙하던 도중 전복...맨유 선수단 중 8명 포함 총 23명 사망

  • 기사입력 2020.03.07 23:14
  • 최종수정 2020.09.13 22:20
  • 기자명 고명훈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장(사진출처=픽사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라면 단연코 뮌헨 비행기 참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고는 1958년 2월 6일 맨유가 유고슬라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러피언 컵 8강 원정경기를 치르고 선수단 비행기로 귀국하는 중에 발생했다.

소련(현 러시아)에서 잉글랜드로 돌아오던 영국 유러피언 항공 609편 비행기가 경유지 뮌헨 공항에서 이륙하던 도중에 기체가 전복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맨유 선수단 중 8명을 포함하여 구단 스태프, 취재기자단을 통틀어 23명이 사망했다. 

사고의 원인은 활주로에 쌓인 슬러시였다. 슬러시는 따뜻한 기온이나 화학적 처리로 인해 눈의 성질이 변한 혼합물로 당시 눈이 적당히 녹아서 질퍽해진 점성을 띈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막 이륙속도에 도달한 항공기가 이 슬러시를 통과하면서 속도가 느려져 이륙을 중단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이륙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에서 기수를 들게 되었다. 결국 이륙에 충분한 속도를 받지 못하고 이륙한 항공기는 실속하면서 인근 민가에 추락, 주차된 트럭과 충돌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처음 독일의 조사에 의하면 날개 위에 쌓인 눈에 대하여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지목돼 영국 조종사 과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기장 제임스 테인은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당하면서 11년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한 끝에 영국에서는 재조사가 2차례 이루어졌고, 여러 실험을 통한 입증 끝에 활주로에 5cm 이상 쌓인 슬러시가 원인인 것으로 발표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사고 직후 공항에서 항공기로 달려온 독일인 파일럿이 날개를 확인했을 때 날개 위에 눈은 없었다는 증언을 독일 조사위원회에서 누락한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독일은 공식적으로 조종사가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기존의 입장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항들은 영국의 발표에 따라 활주로 슬러시에 대한 사고 예방에 신경을 쓰고 있다. 

당시 맨유는 매튜 버스비 감독 체제 아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어 팬들의 충격은 대단히 컸다. 매튜 버스비는 1945년부터 1969년까지 맨유의 감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감독이다. 버스비는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은퇴 선수들을 위한 제도마련에도 노력해 당시 버스비 감독 아래에 있는 축구 선수들을 '버스비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많은 사람들은 비생기 사고로 맨유의 재기가 불가능 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남은 선수들과 매튜 버스비 감독은 1960년대에 다시 그라운드로 복귀해 1963년 리그우승 및 유러피언 우승을 차지했으며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영국 현지에서는 사건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년 희생자들의 추도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일부 맨유 팬들은 당시 사고가 맨유의 유럽 대회 참여를 못마땅히 여긴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비협조로 경기 일정이 촉박해진 맨유가 비행기를 선택했던 탓에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하며 축구협회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1970년에 일어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마셜대학의 미식축구팀 비행기 사고가 있다. 비행기에 탑승한 75명의 선수 및 관계자들이 전원 사망했다. 이후 1993년. 1년뒤 열릴 미국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원정길 도중 비행기 사고로 선수단 전원 사망했으며 2016년 11월 28일에는 브라질 프로축구팀 샤페코엔시의 선수단 및 관계자 81명을 태운 라미아항공 2933편 여객기가 추락해 76명이 사망한 추락 사고도 있다.

환경경찰뉴스 고명훈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