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평택항에 잠든 23살 청년의 꿈

하청업체 소속 이선호 씨, 작업 중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
구호조치 없이 상부보고만...‘죽음의 외주화’ 재현

  • 기사입력 2021.05.10 17:29
  • 최종수정 2021.05.10 17:30
  • 기자명 조희경 기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지난 7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300kg 컨테이너에 깔려 돌아가신 이선호군의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지금 이 시간 많은 청년들 또는 중장년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하고 있다”며 어린 나이에 컨테이너에 깔려 돌아가신 이선호 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청원 오후 4시를 기준으로 9만 3천여 명을 넘었다.

이선호 씨는 군 제대 후 2019년부터 평택항에서 아버지를 따라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의 세관 검수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사고가 발생한 4월 22일 이선호 씨는 평택항 부두 화물 컨테이너 내부에 흩어진 나뭇조각 잔해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본인이 맡은 업무는 따로 있었지만 사고 당일엔 원청업체인 동방 직원의 지시로 전혀 다른 업무를 했다.

원청의 지시로 나무합판 제거 작업을 한 지 5분 만에 300㎏에 달하는 개방형 컨테이너 한쪽 날개가 이선호 씨를 덮쳤다. 반대편에 있던 지게차 작업자가 날개 한쪽을 접기 위해 충격을 가한 순간 진동이 발생하면서 반대쪽 날개가 접히면서 이선호 씨를 덮친 것이다. 정상적인 구조라면 지게차 충격으로 반대쪽 날개가 접히지 않아야 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컨테이너는 90도가 아닌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있었다고 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선호 씨는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측과 현장에 있던 관리자들은 사고 직후 119에 즉각적인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보다 '사내 보고'가 우선이었다.

평택항에서 함께 일하는 아버지 이재훈 씨가 발견할 때까지 회사는 이선호 씨에 대해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입관 절차만 겨우 진행한 채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이선호 씨가 사망하게 된 정확한 경위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지만, 원청과 작업 지시 당사자는 목격자의 진술과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이선호 씨 가족과 '고(故)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고가 기업의 비용절감과 안전 불감증에서 파생된 피해가 고스란히 하청업체 직원으로 전가된 '죽음의 외주화'가 재현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선호 씨는 원청 업체 작업자의 구두 지시를 받고 처음으로 컨테이너 내부 정리 작업을 했다.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사전 교육은 없었고, 안전모조차 지급되지 않았으며 이를 감독하는 안전관리자도 부재했다.

또 당시 목격자들은 컨테이너가 약간 기울어져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지게차 작업이 진행됐다고 진술해 작업환경도 정상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 울산 현장실습 고교생 사망사고 등 셀 수도 없는 산업재해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어렵사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됐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후 적용됨에 따라 법안이 당초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기에 이선호 씨 사고는 해당 법안 적용이 불가능하다.

산업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정부와 기업, 사회 전체가 노력하여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게 해야 할 것이다.

환경경찰뉴스 조희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