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조사로 밝혀진 '수능 문항 거래 조직'… 56명 수사 요청

현직 교사가 뒷 돈 받고 판 '불법 문항 거래'에 대한 전면적 조사 결과 공개

  • 기사입력 2024.03.11 17:54
  • 최종수정 2024.03.13 09:16
  • 기자명 조희경 기자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의 23번 문항(왼쪽)과 한 대형 입시학원 강사가 제공한 모의고사 문항(오른쪽)의 비교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의 23번 문항(왼쪽)과 한 대형 입시학원 강사가 제공한 모의고사 문항(오른쪽)의 비교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교육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공정해야 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신뢰성이 심각한 의문에 직면한 가운데, 사교육 카르텔의 존재가 감사원 감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었다. 교육 부정행위의 심각성을 다룬 이번 감사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가 11일 공개됐다.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 23번 문항이 대형 입시업체 소속 일타강사의 사설 모의고사 문제와 유사함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감사를 통해 재조명되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초기에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했으나, 감사 결과는 이러한 의혹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날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수능 출제에 참여한 일부 교사와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에 참여한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와 문제를 거래한 것이 드러났다. 이 문제 거래는 피라미드식 조직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금품을 주고받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의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Too Much Information (TMI)"에서 발췌됐다. 유명 강사 C씨는 평소 교사들로부터 문제를 구입해 모의고사를 만들었으며, TMI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모의고사에 출제한 사실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현직 교사, 대학 교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 전직 입학사정관, 사교육업체 관계자 등 총 56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 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사건에 연루된 현직 고교 교사들이 입시학원과 함께 피라미드식 조직을 꾸려 모의고사 문제를 사고팔아 고액의 금품을 챙겼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제를 제작·공급하며, 사교육 시장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

◇고교 교사 E씨와 문항 거래 공급 조직

고교 교사 E씨는 수능 및 모의고사 검토위원으로 참여하며 알게 된 교사 8명을 포함하여 문제 공급 조직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제 2000여 개를 만들어 학원 강사 등에게 제공하고, 이로부터 총 6억6000만 원을 받았다. E씨는 이 중 3억9000만 원을 다른 교사들에게 지급하고, 나머지 2억7000만 원을 문항 제작비와 알선비 명목으로 개인적으로 챙겼다. 또한, 세금 회피 목적으로 2억1000만 원을 타인 명의 계좌로 이체하기도 했다.

◇교사 F씨의 평가원 문항 내부 거래

교사 F씨는 E씨와 함께 문항 거래를 계속하며 2020년부터 2023년 4월까지 5100만 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F씨는 평가원에서 일하면서도 문제 거래를 계속했으며, 파견 근무 요청 시 '최근 3년간 상업용 수험서 집필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허위 답변을 했다.

◇고교 교사 G씨의 출판 업체를 통한 문항 거래

고교 교사 G씨는 배우자가 설립한 출판 업체를 공동 경영하면서, 교재 집필 과정에서 알게 된 교사와 자신이 속한 학교의 교사 등 35명을 섭외해 문항 제작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사교육 업체 등에 문제를 넘겨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18억9000만 원을 받았다. 이 중 영업이익은 1억1000만 원이었다.

◇현직 입학사정관 H씨의 자기소개서 강의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 H씨는 입시 컨설팅 업체에 취업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학생들의 자기소개서 작성을 지도했다. 이 과정에서 2020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300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

이 사례들은 교육계 내에서 진행된 문제 거래와 금품 수수의 심각성을 드러내며, 감사원은 이들 외에도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 추가적인 조사와 엄중한 조치를 예고했다. 이번 사건은 교육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사례로, 교육계의 근본적인 개혁과 윤리 의식 강화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환경경찰뉴스 조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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