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기도 포천시 모 정미소, 유독물질로 소독한 정부양곡 ‘나라미’ 부정유통 논란

양곡협회 “‘표지갈이’해 외부로 나가는 쌀, 사전 적발 어려워”
나라미 관리 허술로 인한 국민 피해 사례 해마다 증가세
A씨 “‘훈증소독’ 명목으로 유독물질 에피흄 여전히 사용 중” 주장

  • 기사입력 2019.10.13 20:53
  • 최종수정 2019.10.13 21:13
  • 기자명 임영빈 기자
도정·가공 작업 후 초과 생산된 쌀들 역시 엄연히 ‘정부미’로 포장돼 외부로 반출돼야 한다. 그러나 A씨는 해당 정미소에서는 이를 준수하지 않은 채 외부로 쌀을 빼돌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제보했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제보자 A씨는 문제의 정미소에서 가공 작업을 끝낸 쌀들이 ‘정부미’라고 표기된 포대가 아닌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대에 담겨 외부로 반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미소에서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정미소 측으로부터 해고될까봐 두려워 입을 다문 채 이를 거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경기도 포천시에 한 정미소에서 2대(代)에 거쳐 수십 년간 정부 양곡 ‘나라미’ 추가분을 남모르게 뒤로 몰래 빼돌려 부정유통 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이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및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사진과 동영상이 함께 올라와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청원 페이지 갈무리)
(사진출처=청와대 청원 페이지 갈무리)

문제의 게시글을 올린 A씨에 따르면 해당 정미소는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나라미를 도정 및 가공하는 단계에서 곰팡이나 쥐의 배설물이 묻은 비위생적인 포대 자루에 담아 관리하고 있었다.

또한 ‘나라미’라고 쓰여 있는 포대가 아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구분이 불가한 일반 포대에 쌀을 따로 담아서 시중에 몰래 유통해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정부 양곡을 유통하는 정미소에서 포대갈이로 얼마든지 부정유통이 가능하다는 점과 원산지 표시위반 문제로 쌀 가격 시장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어 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A씨는 본지에 나라미 가공 실태의 문제점을 제보했다. A씨는 현재 논란이 커진 포천시 소재의 정미소에서 부정유통 문제와 비위생적인 실태와 관련해서 목격담을 전했다.

‘포장갈이’한 수입산 쌀, 전국 각지로 불법반출

2014년부터 2019년 9월까지 5년여간 문제의 정미소에서 근무한 A씨는 “해당 정미소에서는 초과 생산된 수입쌀을 외부로 불법 반출해 시중에 판매하고 있으며 판매 대금은 고스란히 사장 개인 계좌로 입금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내 ‘정부 관리 양곡가곡공장 현황’표에 따르면, 문제가 된 정미소는 경기도 소재 9개 정미소 중 한 곳인 것으로 확인되며 ‘나라미(米)’를 생산·보급하고 업체다.

‘나라미’는 정부에서 기초 생활 수급자, 영세 빈곤자, 독거노인 및 재난 구호 목적 등으로 보급하는 쌀이다. 시중 판매되는 일반 쌀과 달리 국가에서 공인으로 보급하는 쌀로 국공립 학교 및 교육기관, 공공기관 및 공기업, 경찰서, 소방서, 군부대 등으로 향한다. 군부대에서는 나라미를 ‘군용미’ 또는 ‘군량미’라고도 부른다.

정부쌀은 각 지역의 정미소에서 가공작업을 거쳐 ‘나라미(米)’라는 이름으로 외부 출하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국내산과 외국산 모두 해당된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정부쌀은 각 지역의 정미소에서 가공작업을 거쳐 ‘나라미(米)’라는 이름으로 외부 출하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국내산과 외국산 모두 해당된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A씨는 나라미의 부정유통 문제와 관련해서 “해당 정미소는 도정작업을 마친 쌀을 국내산과 수입산의 정해진 포대가 아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포대에 쌀을 따로 담아 납품하고 있다”며 “정부 양곡 가공 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라미(米)’라고 쓰여 있는 포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 등에서 수입한 경우도 마찬가지다”라면서 “그러나 수입 쌀은 국내산 쌀과 다르게 떡 방앗간, 막걸리 공장 등 국가가 지정한 쌀 가공 식품업체에 납품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 정미소에서는 수입쌀 초과생산분을 ‘포대갈이’해서 외부로 빼돌리고 있다고 A씨는 주장했다.

양곡관리법에서는 나라미의 부정활용 및 부정유통을 엄격히 단속하고 있다. 나라미 양곡을 지정한 용도 외로 사용하거나 시중유통, 재판매 등으로 처분한 이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사용·처분한 양곡을 시가로 환산한 가액의 5배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받는다.

나라미의 부정유통 시에는 「양곡관리법」 제32조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된다. 지정용도 외 정부양곡 사용·처분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사용·처분한 양곡을 시가로 환산한 가액의 5배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올 1~2월 수입쌀 초과생산분 22톤 ‘이례적’

본지가 부정유통 문제로 지적된 정미소의 쌀 유통현황을 확인한 결과, 수입 쌀의 경우 국내산 쌀과 비교했을 때 초과 생산된 양이 지나치게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0일 포천시청 관계자는 “해당 정미소에서 정부 양곡 ‘나라미’의 부정유통 문제가 인 시점이 올해 1월과 2월”이라며 “그 시기 해당 정미소의 ‘나라미’의 주문 생산량을 확인할 결과, 초과로 가공된 쌀이 유독 많았단 걸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해당 정미소에서 초과 생산한 쌀 가공량의 총합은 국내산의 경우 720kg인 반면, 수입쌀의 경우 매월 1톤씩 초과해 모두 합해 33톤이 발생했다”라고 덧붙였다.

도정·가공 작업 후 초과 생산된 쌀들 역시 엄연히 ‘정부미’로 포장돼 외부로 반출돼야 한다. 그러나 A씨는 해당 정미소에서는 이를 준수하지 않은 채 외부로 쌀을 빼돌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제보했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도정·가공 작업 후 초과 생산된 쌀들 역시 엄연히 ‘정부미’로 포장돼 외부로 반출돼야 한다. 그러나 A씨는 해당 정미소에서는 이를 준수하지 않은 채 외부로 쌀을 빼돌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제보했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또한 “문제가 된 1월하고 2월의 경우 유독 수입쌀 초과 생산 가공량이 많았다”며 “각각 8톤과 14톤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개 정미소에서 나오는 부족 혹은 초과분은 1톤 내외”라며 “1~2월 사이 수입 쌀 초과 가공량이 이렇게 많은 경우는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답변은 대한곡물협회(이하 협회) 또한 마찬가지다.

협회 관계자는 “나라미의 경우 정미소에서 정해진 쌀을 가공해야 하는데, 벼를 가공하다 보면 부족할 때도 있고, 초과량이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벌금을 내서 메꿔야 하고, 초과량이 발생하면 그건 정미소가 시중에 팔아 임의 처분이 가능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보통 정부 양곡 가공 정미소에서 초과 생산·부족분은 대개 1톤 내외”라면서 “초과 생산된 쌀이라고 해도 지자체에 먼저 신고부터하고 처분해야 한다”라고 짚었다.

문제는 정부 양곡 정미소에서 가공하는 물량이 정확한지는 따로 점검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는 데 있었다.

협회 관계자는 “정부 양곡 정미소에서 가공된 국내산 쌀을 초과분이 발생할 경우, 양곡 시장에 임의로 처분 판매할 수 있다고 해도, 수입쌀은 초과분이 나와도 반드시 정부에서 지정한 쌀 가공 식품업체에 판매하고, 보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곡관리특별회계사무규정 제83조 제1항에서는 ‘가공지시 건별·공장별로 가공마감 시에는 제품 및 부산물의 생산책임량을 납품토록 하여야 한다’면서 ‘생산책임량 대비 과부족이 있을 경우에는 부족량은 가공업자 책임 하에 변상하고, 초과량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따로 정한 바에 따라 확인 절차를 거친 후 가공업자 소유로 귀속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쌀 원산지 표시위반 논란과 관련해서도 협회 관계자는 “정부 양곡은 국내산 쌀이든, 수입 쌀이든 초과 가공 생산분이 발생하면 정미소가 ‘나라미’라고 쓰여있는 포대가 아닌, 일반 포대에 담아 유통하기 때문에 물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포대갈이 문제 때문에 ‘지방미’를 ‘경기미’라고 속여 유통할 수도 있고, ‘수입쌀’을 ‘국내산 쌀’이라고 속여 유통할 수도 있다”면서 “정부양곡 원산지 표시위반 문제의 경우 따로 단속에 나서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고 꼬집어 말했다.

나라미의 원산지 표시위반의 경우 관리가 허술한 탓에 그동안도 숱한 문제가 지적돼왔다. 그리고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평화당 박주현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수입쌀 부정유통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사이에 수입쌀 부정유통 적발 건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출처=민주평화당 박주현 의원실)
(사진출처=민주평화당 박주현 의원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6년 69건에서 2017년 23건으로 감소하는 듯 보였으나, 2018년 58건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올해 상반기 적발된 건수만 64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산 쌀과 수입쌀을 혼합하다 적발돼 형사 입건된 건수도 2016년 1건, 2017년 4건, 2018년 1건으로 꾸준히 발생 중이다. 양곡 원산지 미표시로 부과된 과태료도 2016년 2899만 원에서 2017년 1708만 원으로 일순간 감소세를 보였으나 2018년 2151만 원으로 증가했다. 2019년 상반기에만 부과된 과태료만 1432만 원으로 집계됐다.

나라미 원산지 표시위반으로 인한 폐해 역시 극심했다. 2015년에는 모 영농조합법인이 햅살 판매 과정에서 5회에 걸쳐 2014년산 쌀을 반품받아 햅쌀과 섞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에게 판매하다 적발당했다. 올 3월에는 중국산 쌀을 원료로 만든 막걸리를 국내산 쌀로 만든 것으로 속여 약 10억 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긴 양조장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고독성 살충제 ‘에피흄’ 훈증 처리 의혹 ‘충격’

A씨는 부정유통되는 쌀의 안전성 문제도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정미소에서 공공연하게 ‘훈증 소독’을 이유로 맹독성 살충제인 에피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정부비축미와 시중 판매되는 일반 쌀에서 독성물질 ‘에피흄’ 성분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훈증소독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질로, 인체에는 해가 없다’라고 해명했으나 쌀 소비는 오히려 더 위축됐다. 이런 가운데 A씨는 문제의 정미소에서 지금도 에피흄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지난 2013년 정부비축미와 시중 판매되는 일반 쌀에서 독성물질 ‘에피흄’ 성분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훈증소독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질로, 인체에는 해가 없다’라고 해명했으나 쌀 소비는 오히려 더 위축됐다. 이런 가운데 A씨는 문제의 정미소에서 지금도 에피흄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출처=환경경찰뉴스)

에피흄은 지난 2013년 공공비축미뿐만 아니라 시중 판매되는 일반 쌀에서도 성분이 검출돼 큰 파장을 일으킨 물질이다.

당시 조사를 맡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이 마트에서 판매하는 일반쌀 31개 제품을 대상으로 고독성 살충제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중 7개(22%)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에피흄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대량살상 무기로 사용할 만큼 강한 독성을 지닌 물질이다. 특별한 조작 없이 대기에 노출되는 그 순간 독가스인 인화수소를 발생시키는데 정작 농민이 아니라 일반인들조차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함께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당시 농식품부는 “일반유통 쌀에서는 에피흄 성분이 검출되지 않으며 휘발성이 강해 유통 전 3시간 이상 충분히 환기해 양곡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품질에도 손상을 주지 않는다”라고 해명했으나 이는 오히려 더 많은 소비자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19년 현재 온 국민이 식탁에 올라가는 밥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불안과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포천시청 문제가 된 정미소 “점검 강화”에 나서

아울러 포천시청은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정부 양곡 정미소에 대해서 점검에 나섰다.

포천시청 관계자는 “4일 해당 정미소를 대상으로 1차 조사를 실시했다”며 “현재 문제 제기된 부분은 더욱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정유통의 경우, 농관원 등과 불시에 합동 점검할 예정이며 이외 위생관리 부분 등도 확인해 문제가 발견될 시 즉시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해당 정미소에 대해서 나라미 부정유통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권익위는 정부 양곡 정미소에서 정해진 쌀 가공량 외에 초과생산분이 얼마만큼인지를 확인 후, 이를 얼마에 거래했는지 통장을 조회해 확인할 계획이다.

한편, 문제의 정부 양곡 정미소는 부정유통 논란과 관련해서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해당 정미소 관계자는 8일 본지와 통화에서 “(정미소 일이) 청와대 청원에까지 올라간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많이 당황스럽다”면서도 “해당 주장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현재 이를 퍼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으며 경찰에도 신고를 한 상태”라고 답했다.

그러나 B씨는 관련 내용증명 및 정미소 측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라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선을 그었다.

환경경찰뉴스 임영빈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모바일버전